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 시 야당 비토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공수처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라고 말했다. 정권의 권력형 비리에 사정의 칼을 하나 더 만드는 공수처가 야당 주장처럼 ‘독재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공수처가 철저한 정치적 중립 속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여야를 넘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수처는 법에 의해 청와대의 간섭을 일절 받지 않고 검찰총장과 달리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도 받지 않는다. 공수처장 임기도 3년으로 보장돼 있다. 완전한 독립기구인 데다 고위공직자 범죄를 검경에서 넘겨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만큼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데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무력화해 ‘정치적 중립’을 담보할 수 없는 법 개정안을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켜 놓고 문 대통령이 이제 와서 정치적 중립을 거론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 대통령과 여권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겼다면 야당 비토권을 없애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애초에 발의하지도 강행 처리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를 어떻게 독재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야당의 비판을 정면 반박했다. 하지만 야당의 비토권이 무력화돼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공수처장을 맡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공수처가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수사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 대통령은 또 “공수처는 검찰의 내부 비리와 잘못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공수처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수단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정권에 대해 불편한 수사를 하는 검찰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공수처를 악용할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여권 내부에서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공연하게 거론해 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의심은 여권이 자초한 것이다.
정부는 공수처법 외에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과 경찰에 국가수사본부를 설치하는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도 어제 공포했다. 이른바 ‘권력기관 개혁 3법’의 입법을 마무리한 것에 대해 여권은 “역사적인 일”로 평가하며 환호하는 분위기이지만 인권과 국가안보 위축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빗나간 개혁’이란 비판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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