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딸이 방학 때 1박 2일 스키캠프를 보내 달라고 조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는 비상시국에 철없는 소리를 한다며 흘려들으려 했는데, 구체적인 가격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목적지는 나가노의 한 스키장. 신칸센과 하루 숙박료, 조식과 석식, 리프트 이용권, 스키 장비 및 스키복 렌털을 다 포함해 1만8000엔(약 19만 원)이었다. 도쿄역에서 나가노역까지 왕복 신칸센 비용만 1만6280엔임을 감안하면 무척 매력적인 가격이었다.
결정타는 그다음에 나왔다. 국내 여행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 정책인 ‘고투트래블’ 대상이어서 35% 할인을 받을 수 있단다. 신칸센 왕복 비용보다 저렴한 1만3500엔에 1박 2일 스키캠프를 다녀올 수 있다고 했다. ‘보내는 게 돈을 버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코로나19 시국에 일본에서 생활하면 무척 혼란스럽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하는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지 애매모호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감염 확산 단계별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정해진 규정이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가 발령되면 결혼식장 영화관 노래연습장 등은 문을 닫아야 하고, 카페 식당 목욕탕 등은 제한적으로 이용한다.
반면 도쿄도는 지난달 19일 감염 상황을 1∼4단계 중 가장 심각한 4단계로 격상했지만, 이에 따른 구체적 행동대책은 없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회식 때 철저한 대책을 실시해 달라”고 당부했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식사 중에도 대화할 때는 마스크 착용을 부탁드린다”고 말했을 뿐이다. 국민들이 알아서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개인이 판단해야 해 항상 고민스럽다. 초등학생인 둘째 딸이 소속된 농구 클럽은 9일 ‘연습장이 있는 A초등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섬뜩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뒷문장이 더 무섭다. ‘10일 연습은 개개인이 판단하라. 자율에 맡기니, 참석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학교 측이 감염 우려 시설의 폐쇄 등을 결정하면 좋은데, 그게 아니다 보니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첫째 딸은 주말마다 도쿄의 번화가 시부야로 놀러 간다. 도쿄에 긴급사태가 발령됐던 4, 5월에는 정부가 ‘외출 자제’를 요청했으니 딸의 외출을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은 감염자 수, 중증자 수 등 모든 면에서 4, 5월보다 훨씬 심각하지만 정부는 외출 자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부야로 나서는 딸을 붙잡을 명분이 없다.
다시 스키캠프 이야기다. 때마침 스가 총리가 “28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고투트래블 사업을 일시 정지한다”고 14일 발표했다. 특히 감염 상황이 심각한 도쿄를 목적지로 하는 여행은 당장 15일부터 고투트래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도 했다. 그 덕분에 이번에는 딸에게 자신 있게 ‘노’라고 했더니, 딸이 반격했다. “도쿄에서 출발하는 여행은 27일까지는 고투트래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방학이 21일부터 시작되니 21, 22일 스키캠프를 다녀오겠다”고 한다.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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