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청년당’ 키우는 여야…소신행보 용인할 자세는 갖췄나[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6일 03시 00분


청년조직 ‘새바람’ 가능하려면


윤다빈 정치부 기자
윤다빈 정치부 기자
“청년 국회의원들이 기성 정치인이 보여준 악습을 금방 따라 하던데, 굳이 청년정치가 필요한가요?”(더불어민주당 소속 30대 비서관)

“청년당요? 당 혁신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구색 맞추기죠. 지도부 바뀌면 또 유명무실해질걸요.”(국민의힘 30대 당직자)

21대 국회를 전후로 여야가 경쟁하듯 당 안의 자치당인 ‘청년당’ 창당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청년정치는 외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여야 최고의결기구인 민주당 최고위원회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에 20, 30대 청년정치인이 지도부의 일원으로 아침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은 더 이상 여의도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21대 국회에서는 2030세대 11명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20대 국회(3명)보다 3배 이상으로 숫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 몸담은 청년들 스스로도 청년정치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청년조직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들이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기성 정치의 폐단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청년조직을 둘러싼 여야의 속사정을 살펴봤다.

○ ‘청년당 창당’ 경쟁 나선 정치권


더불어민주당은 청년당 부위원장만 30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을 갖췄다.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청년당 부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민주당 이낙연 대표(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당 부위원장만 30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을 갖췄다.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청년당 부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민주당 이낙연 대표(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년조직 구축 경쟁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곳은 ‘집권여당 효과’를 앞세운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올해 1월 전국청년위원회를 전국청년당으로 개편하고 ‘당내 당’ 형태로 재조직화했다. 전국청년당은 독자적인 운영위원회를 비롯해 정책연구소와 후원회를 두고 있으며, 국고보조금 예산의 약 3%인 5억4000만 원을 자체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국청년당은 을지로위원회, 청년주거위원회 등 30개에 이르는 분과별 위원회를 갖추고 있으며 청년당 소속 부위원장은 30명, 운영위원은 150명에 이른다. 전국 17개 시도당과 253개 지역위원회에 모두 청년위원장을 둘 만큼 지역 조직까지 완비한 ‘매머드급’ 규모를 자랑한다. 민주당은 만 45세 이하를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들 중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의 규모는 31만 명 수준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은 이달 초 청년의힘을 창당했다. 청년의힘은 독일 기독민주당의 ‘영 유니언’을 모델로 했다. 영 유니언은 전국적으로 12만 명에 가까운 회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의힘은 초선 의원인 황보승희(44) 김병욱 의원(43)이 임시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원외당원협의회 위원장, 기초의원, 사무처 당직자, 보좌진협의회 등 단위별 청년 대표들이 대표위원으로 합류한 상태다. 내년 1월경 당헌·당규를 수정해 중앙당과 독립된 의결권과 인사권, 예산권을 갖추고 청년정책 발굴에 집중할 계획이다. 예산은 모(母)정당인 국민의힘이 받는 국고보조금의 5%가량을 요청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청년당원 기준을 현행 만 44세에서 만 39세로 낮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현재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만 39세 기준)은 4만 명 정도라고 한다.

정의당도 당 대변인 출신의 25세 강민진 창당준비위원장을 중심으로 내년 2월 ‘청년정의당’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정의당 교육연수원은 청년정치인 육성 프로그램 ‘진보정치4.0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으며, 학기별 5주 과정으로 총 4학기로 걸친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국민의당은 11월 안철수 당 대표를 상징하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에서 이름을 딴 전국청년위원회인 ‘청년백신’을 공식 출범했다.

○ 2030세대가 전체 유권자의 34%


국민의힘은 독일 기독민주당의 청년조직인 ‘영 유니온‘을 벤치마킹한 ‘청년의힘‘을 이달 출범시켰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NK디지털타워에서 열린 ‘청년의힘 창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국민의힘은 독일 기독민주당의 청년조직인 ‘영 유니온‘을 벤치마킹한 ‘청년의힘‘을 이달 출범시켰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NK디지털타워에서 열린 ‘청년의힘 창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정치권이 청년조직에 사활을 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권자 지형상 청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전국 선거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올해 4·15총선 직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4396만 명 가운데 20대(18∼19세 포함)는 18.1%, 30대는 15.9%로 전체 유권자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4%에 달한다.

특히 청년층의 경우 무당층 비율이 높고, 정치적 의사 표출을 잘 하지 않아 표심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내년 4월 보궐선거, 2022년 대선 등 주요 선거를 좌우할 ‘스윙보터(swing voter·부동층 유권자)’의 상당수가 2030세대 청년층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에 따르면 18∼29세 무당층 비율은 55%로, 민주당(28%), 국민의힘(8%)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높았다. 30대 역시 민주당 지지율이 40%, 국민의힘 지지율이 16%인 것과 비교해 무당층이 29%로 상당히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최근 20, 30대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민주당이나 이를 자신들의 지지로 끌고 오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 모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했다.

○ 모(母)정당 병폐 답습하는 청년조직


하지만 정치권에선 청년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다. 선거를 앞두고 이미지 쇄신용 반짝 영입 이벤트에 그치거나 대형 선거를 앞두고 ‘동원용 들러리’로 청년층을 활용했던 과거의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은 늘 청년인재 육성의 필요성을 언급하지만 그때뿐”이라며 “정작 이들을 교육하고 키워낼 의지도 시스템도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경우 청년위원장 출신의 장경태 의원(37)과 대학생위원장 출신의 전용기 의원(29)이 국회 입성에 성공하면서 청년당이 국회 입성의 징검다리로 평가받고 있다. 당 관계자는 “청년위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공천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면서 조직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올해 치러진 청년위원장 선거에서 입후보자가 7명에 달했는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리다툼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야 청년당 모두 모정당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커진 규모에 비해 주목할 만한 정책 이슈를 발굴하거나 소신 있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청년정치인들이 앞장서 당내 강경 지지층을 대변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년당에 몸담았다 탈당한 한 인사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병가 특혜 논란 등 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슈에서 오히려 청년의원들이 앞장서 추 장관을 옹호했다”며 “친문(친문재인) 호위대를 자처한 의원들이 기성 정치인보다 더한 주장을 내놓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국민의힘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월 초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 등 부적절한 카드뉴스로 논란을 빚은 중앙청년위원회 주요 당직자가 사퇴한 뒤 청년의힘을 창당하는 과정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청년의힘 출범이 더딘 데 대해 비대위원들에게 여러 차례 질책을 했었다”며 “시기가 급박하다 보니 당헌·당규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대표위원 얼개만 갖춰서 출범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과거 강경보수 성향의 중앙청년위원회 구성원들이 빠지게 되면서 특정 대선후보와 가까운 인사들이 청년의힘을 장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내년 보궐선거와 대선에서 대선후보들이 당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하는데, 자칫 어른 싸움에 앞서 애들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이번에는 다를까? “당론에 갇히지 말아야”


다만 일각에선 청년정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정치 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류호정 의원(28)은 복장 논란과 함께 국회에 직접 대자보를 붙여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호소해 화제가 됐다. 같은 당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장혜영 의원(33)은 9월 대정부질문에서 ‘86세대’를 향해 “민주화의 주역들이 어느새 기득권자로 변해 시대의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됐다”고 비판해 주목을 끌었다. 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30)은 4차 추가경정예산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국민의힘에선 대구 출신으로 4·15총선에서 전남 순천에 도전장을 냈다 낙선한 천하람 변호사(34)가 “5·18을 부정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게 보수가 아니다”라며 소신 행보를 보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정치문화에서 유럽식 청년당이 자생력을 갖추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한다. 청년의힘 핵심 관계자는 “청년들이 기존과는 다른 정책이나 목소리를 내면 당내 어르신들이 ‘너도 좌파냐’고 비판하기 일쑤”라고 했다. 민주당 청년당 관계자는 “소신 행보를 했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당론과 지지층의 요구를 뛰어넘는 활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일종의 ‘선배 문화’가 새로 진입한 신세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며 “개성이 강한 정치인이 늘어나면서 당론을 뛰어넘는 소신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윤다빈 정치부 기자 empty@donga.com


#청년당#소신행보#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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