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눈꽃[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7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6일 03시 00분


여덟 살짜리 딸은 아버지의 지시대로 옆에서 성경책을 읽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제판기를 이용해 아연판에 점자를 새겼다. 그런데 아이가 읽어주는 성경은 쪽복음, 즉 권별로 분리된 휴대용 성경이어서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행을 바꿔 읽을 때 같은 줄을 또 읽거나 한 줄을 건너뛰고 읽는 일이 잦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연판으로 딸의 머리를 내리쳤다. 딸은 서러웠다.

한글 점자를 만든 송암(松庵) 박두성이 그 아버지였다. 그에게는 딸보다 점자가 먼저였을까. 하기야 일제강점기에 한글 점자를 만들어 장애인 교육에 헌신하는 일은 어지간한 결기로는 안 될 일이었다. 장애인학교 교사였던 그는 제자들을 규합해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비밀리에 조직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 불리는 한글 점자를 만들어 1926년 11월 4일 발표했다. 총독부는 한글 점자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시각장애인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중 삼중의 “정서불안, 열등감, 비사회적 행동의 부차적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설득했다.

그는 위원회의 이름을 육화사(六花社)로 바꿨다. 점자가 여섯 점이고, 사물을 보는 눈과 발음이 같은 눈(雪)의 결정이 육각형이어서 붙인 이름이었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겠다는 눈꽃 같은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암시하듯 그는 장애인 교육에 헌신했다. 한글 점자 책을 200여 종이나 만들어 보급하고 통신 교육으로까지 확대했다. 이십 년 가까이 점자를 찍느라 시력은 극도로 나빠지고 눈동자는 회색으로 변했다.

그러나 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로서는 낙제였다”. 의붓아버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딸이 아버지의 사랑을 비로소 느낀 것은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였다. 딸은 “누워 있는 내내 그 뾰족한 맛이 많이 깎이어 사랑을 마구 보이시던 무던히 고마운 아버님으로 변하셨던 것을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뾰족함이 있었기에 훈맹정음이라는 눈꽃을 피울 수 있었다. 딸도 그것을 알았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점자#눈꽃#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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