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진짜 진지해요”라고 말하는 순간조차 개그맨 같은 야구 선수가 있다. 15년 넘게 진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NC 베테랑 내야수 박석민(35)이 주인공이다.
그가 얼마나 웃기는 선수인지는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넣어보면 된다. 어떤 영상을 골라도 몇 분 동안 세상 근심 다 잊고 ‘몸 개그’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정작 자신은 “야구 선수가 야구를 잘해야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재밌게 볼 수 있는 퍼포먼스만으로도 그는 KBO리그의 보물 같은 존재다.
수십 가지 개인기 중 트레이드마크는 트리플 악셀 스윙이다. 스윙을 한 뒤 공중에서 육중한 몸으로 피겨스케이팅의 회전 동작을 하는 것인데 과연 이런 동작을 할 수 있는 야구 선수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홈런을 치기도 한다. 삼성 시절 팀 동료였던 ‘국민 타자’ 이승엽(44)은 “한마디로 천재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동작으로 안타를 치는 걸 보면 불가사의하다”고 말한 바 있다. 비하인드 빠던(배트 플립), 앉아 쏴 홈런 등은 메이저리그에도 소개됐다.
‘뼈그맨’(뼛속까지 개그맨)이라 불리는 그는 뛰어난 야구 선수이기도 하다. 올해 타율 0.306, 14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NC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개인적으로는 출루율 0.436으로 프로 입단 17년 만에 생애 첫 개인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올해 그가 받은 가장 의미 있는 상은 바로 ‘사랑의 골든글러브’였다. 1999년 제정된 이 상은 선행에 앞장서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선수나 구단에 수여한다. 그는 2014년과 2015년 이미 두 차례 포지션별 최고 선수에게 주는 골든글러브(3루수 부문)를 받았다. 이번에 받은 골든글러브는 똑같은 황금장갑이었지만 ‘사랑’이라는 특별함이 더해졌다.
그는 지난 5년간 8억 원이 넘는 돈을 야구 후배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했다. 야구팀이 있는 초중고교, 유소년 야구 재단에 6억 원 넘게 후원했다. 산불 성금과 코로나19 성금으로도 거액을 쾌척했다. 두 차례의 FA 계약으로 100억 원 넘는 돈을 벌었지만 매년 2억 원 가까이 기부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어릴 적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나도 나중에 꼭 성공해서 베풀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기부를 시작한 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너무 기뻤다. 내 꿈을 선뜻 지지해준 아내(이은정 씨)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선한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동료들에게도 전파됐다. NC는 기부에 적극적인 선수들이 가장 많은 팀이다. 양의지, 나성범, 박민우, 김태군, 김진성 등 올해 우승 멤버들은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 이웃을 돌아보고 있다. 박석민은 “동료, 후배들이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기부에 함께 나섰다. 팬들의 사랑으로 먹고사는 선수들이 더 많이 기부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카톡 프로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첫 페이지에 띄워져 있다. “먼저 인간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자. 야구 실력은 그 다음이다.” 인성에 실력, 개그까지 두루 갖춘 그가 모쪼록 오래오래 야구를 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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