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 출발을 준비하는 시점. 삶의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또 맞아들이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지점이요, 금년과 내년이 잠시 소란스레 해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하루 가운데 하나일 뿐이면서 또 왠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삶의 특별한 매듭 같은 날이기도 하다. 객지를 떠돌던 시인은 이날에 마침맞게 귀향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반갑기만 하다. 그동안 어머니는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겨울옷을 마련했고, 자주 안부 편지를 보낸 듯 먹물 자국이 선연한 편지가 아들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수척해진 아들이 겪었을 고생살이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는 어머니, 마음속 켜켜이 쌓였을 세상 풍진의 생채기들을 후련히 털어버리라는 배려였을 테지만 아들은 차마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제대로 자식 노릇도 못한 송구함을 애써 감추고 어물어물 대답을 얼버무리는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심사는 얼마나 울울했을까.
이 시는 모자의 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겨울옷의 촘촘한 바느질, 편지에 밴 또렷한 먹물 자국, 야윈 얼굴 등 구체적 형상을 그렸으면서도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그저 과묵하고 우회적이다. 유창한 변설(辯舌)을 동원하지 않고도 서로 마음이 통하고 뜻이 고스란히 전달되기에 피붙이, 살붙이란 이름이 생겨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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