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린 청와대 여민 1관 영상회의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외부 전문가는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비공개 안건으로 올라온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후 글로벌 통상 전략’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서다.
이날 보고는 바이든 당선인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구상이 본격화된 지 일주일 만에 이뤄졌다. 회의에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대응이 주로 논의됐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CPTPP에 대한 통상당국의 소극적 대응을 지적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CPTPP 가입 의사를 밝힌 것을 들어 ‘우리는 왜 통상당국에서 그런 것을 검토하지 못해 우리가 중국한테 꼼짝 못하는 식으로 비치게 만들었느냐’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
정부가 CPTPP 가입을 검토해온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CPTPP 복귀가능성을 밝힌 2018년 초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통상당국은 일본 등이 참여한 CPTPP의 높은 개방도와 공기업 규제 조항 등을 들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불리하다는 취지에서다. 미 대선 직후 이뤄진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서명으로 통상전략까지 중국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자 결국 대통령이 통상당국을 질책하며 CPTPP 가입 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CPTPP 복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외교 전략 유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이 중국의 ‘통상 굴기’를 견제할 새로운 통상전략을 추구할 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전략 수정 없이 통상 차원의 유불리를 따지는데 시간을 보낸 외교안보라인의 느슨한 대응이 친(親)중국이라는 부담스러운 인상을 남겨놓은 셈이다.
전통적인 미국 외교의 복원을 내건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대비한 외교적 준비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은 한두 곳이 아니다. 당정청이 국회 단독 처리를 밀어붙인 대북전단금지법이 대표적이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전방위적이다. 영국, 일본 등 미국의 핵심 우방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 등 공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그냥 넘어가기도 어려워졌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를 내기 전 통일부나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만 했어도 굳이 법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문제”라며 “미국 의회의 공개적인 우려가 나오기 전 대응도 민첩하지 못했다”고 했다. 미 대선 직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특사단이 미국을 다녀오고, 문 대통령이 친한파 의원들에게 직접 친서를 보내는 등 겉으로 드러난 노력만큼 미 의회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물밑 움직임이 활발했는지 의문이다. 그랬다면 굳이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비판하는 대북전단금지법을 표현의 자유, 과잉처벌 논란을 안고 급히 단독 처리했을 이유가 있었을까.
일각에선 느슨해진 외교안보라인의 행보를 두고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매몰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안팎에선 내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새롭게 형성될 북-미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보하기 위해선 강한 대북 유화 메시지로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외교엔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1년 반보다는 바이든 정부 4년 또는 8년을 내다본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북-미 회담이 한창이던 2018년 청와대는 “남북문제는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한미관계도 유리그릇 다루듯 신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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