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산업 실무 지원기관인 보험연수원장에도 정치권 인사가 왔습니다. ‘낙하산 인사’ 관행이 도를 넘은 것 아닙니까.”
2018년 보험연수원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정희수 전 원장이 내정됐을 때 보험업계에선 “보험연수원마저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장악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정 전 원장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소속으로 17∼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대 총선에서 낙천하자 당적을 옮겨 더불어민주당 캠프로 들어갔다. 문 대통령 당선 후 이듬해인 2018년 연봉 3억 원의 연수원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 당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 승인도 받지 않아 취임식이 무기한 연기될 정도로 시끌시끌했다.
직원 43명의 민간기관인 보험연수원은 보험사 직원 교육, 보험 관련 자격시험 등의 업무를 맡는 보험 산업 실무지원 기구다. 보험업 관련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자리이지 ‘힘 있는’ 정치인들이 와야 할 곳은 아니라는 게 보험업계의 얘기다. 정 전 원장은 19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장을 맡았지만 보험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나마 연수원장 임기(3년)조차 다 채우지 않은 채 이달 초 연봉이 더 센 생명보험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보협회장에 가려고 2년간 보험 연수 받았느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보험연수원은 부랴부랴 새 원장 인선에 나섰다. 설립 55년 만에 원장후보추천위원회도 처음으로 구성했다. 정 전 원장의 낙하산 논란 이후 투명성과 공정성에 입각해 새 원장을 뽑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치권 인사에게 자리가 돌아갔다. 3선 의원 출신인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민주당)이 새 원장에 내정된 것이다.
민 내정자는 17, 19, 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1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정 전 원장의 빈자리를 다시 정치권 인사가 차지하자 업계 안팎에선 보험연수원장을 거쳐 협회장이 되는 ‘정피아 코스’가 새로 뚫렸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권 인사의 반복된 낙하산 관행도 문제지만 업계에서 은근히 이를 원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이 때문에 금융업계에선 정치권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협회장을 원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산업은 점점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는데, 기관장이 임기도 마치지 않고 다른 자리로 옮기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정치권 출신 인사가 차지하는 건 이런 변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낙하산 인사는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에게도 손해다. 금융규제의 상당수는 소비자 보호와 연결돼 있는데, 낙하산 인사들이 로비의 순간에 누구의 편에 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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