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주 CNN 인터뷰에서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과거 전단 살포 후 북한이 고사포를 쏜 사례를 들었다. 이에 앵커는 “그런 대응을 하다니 정도가 심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외교부는 이 앵커 발언에 “전단 살포나 북측 발포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는 한글 자막을 달아 유튜브에 올렸다. 전단 금지 취지에 공감하는 투로 읽힐 수 있는 오역이었다. 외교부도 뒤늦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라고 했다.
외교부의 어처구니없는 오역을 그저 실무자 탓으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의도적인 오역은 아니겠지만 번역과 게재 과정에서 점검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데는 기본이 무너진 조직의 문제이자, 어떻게든 전단금지법의 불가피성을 홍보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명 오기부터 구겨진 태극기, 각종 성(性)비위 등 숱한 사건사고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외교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대외정책을 책임진 외교부의 추락은 무엇보다 리더십의 실종에 원인이 있다. 강 장관은 이달 초 개각으로 이 정부 최장수 장관 기록을 갖게 된다지만 그 아래에서 외교부는 청와대로부터 그저 지침만 기다리는 하부 조직이 됐다. 그 조직의 관리마저도 장관 스스로 ‘리더십의 한계’를 하소연할 정도로 구제불능 상태가 됐다. 탈출만 기다리는 장관, 보신에 길들여진 고위직, 무능이 면책되는 실무자들의 조직에서 나올 것은 실책과 면피뿐이다.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를 열어 전단금지법을 의결했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과 재고 권고에도 끝내 입법 절차를 마무리했지만 이제 전단금지법은 인권단체의 유엔 제소 등으로 국제여론의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그간 입법 과정에서 외교부의 존재는 과연 있었는가. 국제규범에 비춰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는 고사하고 국제여론을 전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이런 외교부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어떻게 변호할 수 있을지 더더욱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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