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왜 반성하지 않나[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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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윤성여 등 수많은 조작 사건
선택적 수사-기소하는 검찰 견제해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은 충격이었다. 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하다니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의아하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 검찰 수사 결과인데 맞겠지’ 했다. 아니었다.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검찰의 조작으로 드러났다. 강 씨는 2015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의는 승리했나. 아직 아니다. 누명을 쓴 강 씨는 재심을 받기 위해 24년이나 투쟁하면서 암까지 얻었다. 무고한 사람에게 반인륜적 범죄를 뒤집어씌우고 그 후로도 진실 규명을 방해했던 검사들은 승승장구하며 출세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는 노태우 군사독재에 반대해 대학생들의 시위가 줄을 잇던 때였다. 유서 대필 사건은 민주화 세력을 도덕적 궁지로 몰고 정권에 유리하게 정국을 반전시켰다. 수십 년 뒤 무죄가 났지만 검찰의 조작 수사는 이미 정치적 효과를 다 누렸고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받았다.

최근 밝혀진 조작 사건들에는 언제나 검찰이 있었다. 2013년 간첩으로 구속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사건 역시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합작품임이 드러났다. 국정원이 증거를 위조하고 검찰은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증거가 위조임이 드러나자 오히려 검찰은 다른 혐의를 찾아내 보복 기소를 했다. 지난달 국가가 유 씨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법원은 “현시대에 일어나리라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검찰과 국정원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춘재 대신 2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 사건은 시국 사건뿐 아니라 형사 사건에서도 숱하게 조작이 이뤄졌음을 방증한다.

놀라운 일은 사건 조작에 관여한 검찰들이 책임지기는커녕 아무도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도 몰랐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핑계다. 검찰이 공소에 불리한 증거는 숨기고 유리한 증거만 내놓아 사건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진실보다 성공에 집착하고, 잘못이 드러나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부당하게 썼다면 그것은 큰 범죄다. 그런데 조작 사건들에 대해 누가 왜 어떻게 조작했는지 진실을 밝히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일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0년이 지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배상 판결이 나고, 40년 지난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도 다시 조명되는 요즘이다. 공권력을 남용해 인권을 짓밟은 범죄에 대해서는 왜 수사하고 단죄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검찰의 오만한 수사와 선택적 정의가 계속 재생산된다.

검찰의 ‘자기 식구 봐주기’는 더 이상 놔둘 수 없는 수준이다. 임은정 서지현 검사가 그렇게 외쳐도 검찰 내부 비리는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과 성접대 의혹은 경찰 수사를 검찰이 사사건건 방해했고, 최근 룸살롱에서 접대 받은 검사들도 희한한 셈법으로 3명 중 1명만 기소했다.

수십 년간 검찰은 자정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왔다. 검찰은 강하게 장악하는 정부에는 앞장서 충성하고, 검찰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정부에는 오히려 달려들었다. ‘검사와의 대화’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면전에서 조롱했고, 검찰 출신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으로 검찰을 장악한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PD수첩 수사와 미네르바 사건을 만들어 정권 안보에 앞장섰다.

검찰은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부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인정해준다고 바뀌지 않는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해 지나친 힘을 빼고, 검찰도 잘못하면 수사 기소할 수 있는 별도 기관을 만들어 견제해야 한다. 검찰개혁은 이제 첫발을 뗐다. 민주적이고 균형 잡힌 검찰로 다시 태어나도록 국민들이 끝까지 감시해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검찰#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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