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의 대담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처리로) 삐라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적어도 북한이 남측과 대화에 나설 수 있는 밑자리는 깔아놓은 것”이라며 “새해부터는 북한이 보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영 장관은 새해 북한의 대외행보와 관련해 “남쪽에는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을 해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정 수석부의장의 발언은 정부여당이 강행한 대북전단금지법이 북한의 위협과 주문에 따른 ‘김여정 하명법’임을 거듭 확인시켜 준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직속 통일정책 자문기관의 수장이 했다는 발언치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지만 이 정부 인사들의 대북 인식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작부터 “경찰과 군 병력이라도 동원해 전단 살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측이 성의를 보였다고 북한이 상응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유치한 착각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한술 더 떠 북한이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내년 2, 3월 열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 또는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장관도 “연합 훈련이 갈등이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사실상 맞장구쳤다. 이대로라면 김정은 정권은 주민들을 동요시킬 전단 살포를 막은 데 이어 군사적 걱정까지 덜어낼 판이다. 이러니 북한은 더욱 기고만장해질 뿐이다.
이처럼 남측이 허상에 빠져 스스로 길들여지고 있는 줄도 모르는 사이 국제사회의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의회에선 한국의 집권여당을 두고 ‘자유를 제한하는(illiberal) 정당’이라고 성토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렇게라도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북-미 대화를 이끄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의 코웃음을 사고 국제사회의 신뢰까지 잃은 마당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과연 한국에 그런 역할을 맡기기나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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