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년에 대표이사 3년 차에 접어든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나 플랫폼 회사처럼 좋은 실적을 올린 곳도 많지만 이 회사는 그야말로 죽음의 레이스를 펼쳤다. 그래도 고비를 잘 넘겨 이제는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게 이 대표의 판단이다. 하지만 그는 내년에 임기가 만료되면 후년엔 ‘반드시’ 물러나겠다고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때문이다.
“후배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회사가 벌이고 있는 건설 현장이 40∼50개다. 하루에 투입되는 인력이 3만여 명, 해외까지 합하면 7만 명이다. 그 모든 인력을 대표가 어떻게 책임지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법이다.”
정의당, 더불어민주당만 아니라 국민의힘까지 관련법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만 5개다. 핵심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표이사에게 최소 2∼5년의 징역형을 가한다는 것이다. 여당은 이 법을 통과시키려는 절차에 착수했다.
이 대표는 해당 법이 통과되면 1년가량 유예기간을 둘 텐데, 마침 그 기간이 자신의 임기와 일치하니 회사가 1년을 더 하라고 붙잡든 말든 이제는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말년에 1년 더 욕심 부리다가 감방 갈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 중대 사고가 일어나는 걸 막아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처음 임원이 됐을 때 맡았던 업무가 안전담당이었기에 그 중요성을 더 잘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는 아무리 조심해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독일군이 포로가 된 유대인을 감시하기 위해 포로 수만큼 감시병을 늘렸지만 유대인들의 탈출을 막을 수 없었듯이 일대일로 안전관리를 해도 사고는 어느 순간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사고는 줄이는 게 최선이고, 그러려면 대표의 처벌이나 벌금형 강화가 아니라 비용을 들여 안전을 확보하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잘 지키도록 근로자 본인에 대한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왜 모르느냐고도 했다.
“다른 걸 떠나서 최소 징역형을 정하는 법, 그것도 대표의 책임범위가 모호해 뭘 어떻게 어기면 법 위반인지도 모르겠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대표에 대한 처벌의 상한 범위를 두는 법이 이미 많고, 그것도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사고 발생 시 무조건 형을 살도록 최소 형량을 정해두는 법은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라고 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오너가 바로 대표인 경우가 많은데 오너가 구속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까지도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사람, 특히 결정권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중소벤처기업부는 “다른 법령과의 균형에 맞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법무부는 “중대재해의 피해 정도를 구분하지 않고 사망 시 일률적으로 유기징역의 하한을 둔 것은 과도하다. 법원이 중대재해 발생 법인에 전년도 매출의 10%까지 벌금을 부과하게 한 것, 영업정지 허가취소 등을 결정하게 한 것도 행정 제재를 법원이 결정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3권 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법원행정처도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런 모든 합리적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통과를 위한 절차에 들어가 있다.
안 그래도 기업 대표를 형사처벌하는 법이 우리나라엔 너무 많다. 작년까지 2657개였고, 21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 중 처벌을 신설 또는 강화한 법이 117개나 된다. 샐러리맨들의 최종 목표, 꿈의 지향점이 어쩌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자리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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