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백신 등 실패, 연신 말 바꾸기
‘잘못했다’ 한마디, 그렇게 어려운가
“모두 용 될 필요 없다”… 자신들만 예외
文 ‘고구마 정치’가 위선 공화국 온상
시작은 이랬다. ‘모두가 서울 강남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내가 살아봐서 안다). 그러더니 ‘모두가 서울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3기 신도시 아파트 공급대책 발표)→‘모두가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빌라·연립 위주 공급대책)로 졸아들었다. 급기야 나온 대책이 ‘모두가 집에 살 필요는 없다’(호텔 살면 된다).
거주뿐 아니라 소유 형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집을 가질 필요는 없다’(보유세 폭탄)→‘모두가 전세 살 필요는 없다’(임대차 3법으로 전세 절벽)→‘비싼 월세 내며 살 필요 없다’(공공임대 살면 된다).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내 집에서 편안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느낌이다.
무능하니 정책의 화살을 표적과는 한참 먼 데다 24번이나 날려 버렸다. 오만하기까지 해 그래도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른다. 코로나19 백신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세계가 부러워하는 K방역이 있으니 미리 준비할 필요 없다’더니 ‘백신을 개발한 나라에서 먼저 접종하는 건 불가피하다’고 꼬리를 내렸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이라는 사람은 “(백신 안전성)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굉장히 다행스럽다”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해댄다. 연말 안에 30여 개국이 접종에 들어가고, 일반 국민의 접종은 이 나라들보다 적어도 반년 이상 늦어질 텐데 ‘굉장히 다행’이라니…. 阿Q도 울고 갈 ‘정신 승리’다. 옹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백신 확보 대책마저 뜻대로 안 되면 ‘모두가 백신을 맞을 필요는 없다’고 할 건가.
부동산과 백신 정책에서 그렇게 자주 말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잘못했다.” 사과가 바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일 터. 문재인 정부 정책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데도 이 한마디를 안 하려고 궤변과 ‘정신 승리’를 들이대며 듣는 사람의 양심과 상식에 상처를 입힌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서울 강남 아파트를 팔아 거액을 챙겨도, 비리 잡화점 수준에 인성(人性)마저 의심되는 자격 미달이어도 장관이 되고, 야밤에 택시기사에게 행패를 부려도 차관이 된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면 된다’는 조국 씨의 멋진 말. 그 안에 숨겨진 행간(行間)은 부인의 1심 판결로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났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단, 우리 가족은 용이 돼야 한다).’
문 정권은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 1, 2위로 아시타비(我是他非)와 후안무치(厚顔無恥)를 꼽을 정도로 ‘내로남불 정권’으로 기억될 것이다. 왜 그럴까. 보통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다. ‘아파트 살고 싶고, 기왕이면 강남 아파트 살고 싶고, 그 아파트가 내 소유라면 더 좋다’는 욕망, ‘나는 몰라도 내 자식은 공부 잘하고, 용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평범한 인간들의 이런 본성은 짓누르면서 자신들은 예외다. 공정과 나눔의 화신인 양 하면서 실상은 좋은 아파트 살고, 자식 스펙 챙기고 유학도 보내면서 집요하게 인간 본성을 추구한다.
이런 언(言)과 행(行)의 극심한 해리(解離) 현상의 핵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문 대통령은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런 게 사과인가. 사과문에 ‘결과적으로’ 같은 수식어를 넣거나 ‘상처를 줬다면’ 같은 가정법을 넣는 건 사과가 아니다.
말로는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절차적 정당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추미애 법무부의 징계안을 즉각 재가하며 뒤에서 윤석열 징계를 밀어붙인 사람이 누군가. 그래 놓고 진솔한 사과는커녕 제3자인 ‘인사권자’로서 추미애와 윤석열의 싸움에 대해 사과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유체이탈 화법. 듣는 사람은 찐 고구마를 먹다가 목에 걸린 것처럼 속이 답답하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코로나 피해 예술인 지원 예산을 타낸 건 누가 뭐래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쏟아진 비판 여론에 도리어 ‘착각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이 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으로서, 특히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외친 대통령으로서 부끄러움을 표시했어야 마땅했다. 자식 일마저 남 일 보듯 하는 문 대통령의 ‘고구마 정치’가 위선이 난무하는 나라를 키운 온상이다. 영양 많은 다이어트 식품 고구마엔 미안한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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