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은 절반 이상이 웹소설을 씁니다. 2000년 이후 태어난 학생들은 문학의 첫 경험이 웹소설이에요.”
소설가 이기호(48)는 국내 최초로 고교생 웹소설 공모전을 진행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이기호는 199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뒤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받으며 순문학계의 정석을 밟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학과장으로서 웹소설 공모전을 연 건 시대의 흐름 때문이다. 그의 자전적 소설 ‘원주통신’에서 주인공은 세계문학전집으로 문학을 접한다. 반면 요즘 학생들은 웹소설을 읽으며 문학소년·소녀가 된다. “웹소설을 쓰다 흥미가 생겨 대학에서도 문학을 전공하게 됐다”는 한 문예창작학과 학생의 말처럼 대학엔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 넘쳐난다.
작품성은 어떨까. 이번 공모전에서 최고상인 장원을 받은 ‘편집자 권한 대행’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오늘날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암시를 제공했다” “간결하고도 흡인력 있는 문장에 기초했다”고 호평했다. 전통적인 신춘문예 심사평을 보는 듯하다. 지난해 5000억 원까지 커진 시장규모는 차치하고라도 “웹소설과 순문학 간에 칸막이를 치거나 등급을 나누는 건 이제 필요 없다”는 이기호의 말에서 웹소설의 높아진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등단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는 문예지 소설이나 출판 편집자의 퇴고를 거치는 단행본에 비해 웹소설의 전반적인 질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매일 연재를 하다 보니 작품성보단 분량을 채우기 급급하다”는 한 웹소설 작가의 푸념처럼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은 자칫 문학의 저질화를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장르적 다양성을 위해선 웹소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드라마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로맨스 판타지의 원조는 웹소설이다. 이제는 찾기 힘들어진 무협소설도 웹소설에선 여전히 강세다. 미스터리, SF도 웹소설 작가들이 무궁무진하다.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긴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을 영화 ‘신과 함께’의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가 영화화하기로 한 것처럼 2차 저작물로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손원평의 ‘아몬드’,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 올해 출판시장에서 소설 판매를 이끈 여성 작가 4인의 작품은 순문학이 아니다. 어쩌면 장르성이 짙은 웹소설은 꺼져가는 소설에 대한 관심을 되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요즘은 서점이 아니라 웹소설 플랫폼을 기웃거린다”는 한 영화 관계자의 말을 주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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