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소통하는 과거[임용한의 전쟁史]〈14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9일 03시 00분


영국에는 임피리얼 전쟁박물관(IWM·Imperial War Museum)이라고 불리는 전쟁기념관이 여러 개 있다. 우리의 전쟁기념관 같은 종합적인 IWM은 런던 케닝턴에 있다. 다른 곳들은 전함, 탱크, 항공기 등 주제별로 특화됐다. 맨체스터에도 IWM이 있는데, 이곳은 제1차 세계대전 전문이다.

1914년에 발발한 1차 대전은 그 규모는 물론이고 러시아 혁명, 2차 세계대전, 블록경제와 경제공황, 전투기와 탱크의 등장 및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세계사의 방향을 결정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너무 충격적인 영향 때문인지, 무모한 희생 때문인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임에도 연구나 대중매체 양측에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런 이유로 맨체스터 박물관에 기대가 컸다. 기대가 너무 컸던 때문일까 실망도 컸다. 맨체스터 운하 옆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박물관 전경을 볼 때만 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좀 싱거웠다. 첫 번째 입장객이 우리와 미국에서 온 관광객이었을 정도로 외국인들도 적지 않게 오는데, 의외를 넘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IWM이라는 이름이 아깝잖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날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 있는데, 박물관의 연구와 소통 기능이다. 디스플레이만 화려하다고 훌륭한 박물관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공감이다. 재미로 접근하는 전쟁이 아니라 지금 젊은이들의 3, 4대 선조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던 사건, 그들의 고통과 실수, 잘못을 유물 앞에서 체험하고 지금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지성을 갖추게 하는 것. 이것이 전시와 연구의 근본 목적이다.

어느 유럽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다. 역사 선생이 1차 대전 전적지에서 열변을 토하는데, 학생 몇은 병사의 묘지 뒤에 숨어 선생과 죽은 자들을 비웃으며 마리화나를 피운다. 과거를 맹목적으로 미화해도 안 되지만, 과거에 한풀이나 하고, “너희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 있어”라고 비아냥거리는 나라는 이미 위기에 접어든 것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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