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관·지자체장 등 빼고 ‘기업인 重罰’만 고수한 중대재해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0일 00시 00분


정부가 그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한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위헌 논란을 빚은 조항 중 일부는 삭제했지만 기업주와 경영책임자(CEO)에 대한 징역형은 과잉처벌이라는 지적이 많은데도 손질을 하지 않았다.

정부안은 1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공포 후 1년, 50∼100인 미만은 2년, 50인 미만은 4년간 적용을 유예하는 식으로 사업장 규모에 따라 시행 시점을 달리했다. 50∼100인 사업장에 2년 유예기간 신설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안과 달라진 부분이다. 안전의무를 여러 번 어긴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터지면 해당 사건의 의무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처벌하는 조항은 여당 안에서도 위헌이라는 지적이 많아서인지 빠졌다. 현실에 맞춰 일부 조항이 수정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기업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정부안에서도 개선이 되지 않았다. 박주민 의원 안은 사망사고,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사고가 터졌을 때 사업주 등을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상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정부안은 이 중 벌금 부분을 ‘5000만 원 이상 10억 원 이하’로 조정했다. 그러나 징역형 부분은 그대로 유지했다. 선진국들은 산업재해 형사처벌 수위를 6개월∼2년의 ‘상한’만 정해 놓고 있다. 징역형을 강화해도 사고예방의 실익은 적고 기업 도산 등 부작용만 커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안은 ‘중앙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장’을 처벌하는 조항을 슬그머니 삭제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중소기업인이 수감돼 수십, 수백 명 직원이 길거리에 나앉는 건 어쩔 수 없고, 사고예방 관리책임이 있는 고위공무원은 현실적으로 책임을 묻기 곤란하다는 이중적인 기준 적용이다.

코로나19와 주 52시간제 확대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주들은 법안에 대한 재고(再考)를 호소하고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더라도 모든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입법은 결국 국민 일자리를 위협하는 칼로 돌아올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근로자들이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실질적으로 막으면서도, 고용의 터전인 기업도 망가뜨리지 않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지자체장#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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