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출범을 위한 첫 실무 화상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남북한은 생명과 안전에 있어서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 있고 전염병과 자연재해 같은 공동 위협에 영향을 받는다”며 “북한의 참여는 북한은 물론 모든 인접국의 공중보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회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 재개를 위해 9월 75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출범시키는 시작이었다. 문 대통령은 “방역과 보건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단초가 될 것”이라며 “북한을 포함해 중국 일본 몽골 한국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체를 제안한다”고 했다. “여러 나라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는 협력체는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다자적 협력으로 안보를 보장받는 토대가 될 것”이라며 이 협력체가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일환임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날 회의 참가국은 우리나라와 미국, 중국, 러시아, 몽골 등 5개국뿐이었다. 일본은 일단 이 회의에는 참석했지만 앞으로도 협의체에 참여할지는 “검토하겠다”며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 제안의 핵심인 북한은 없었다. 문 대통령이 ‘생명공동체’를 강조하며 유엔총회에서 직접 손을 내밀었지만 북한이 끝내 외면한 셈이다. 외교부는 “협력 국가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논의의 정례화 등을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북한이 빠지면서 첫발부터 동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강 장관이 이날 재차 북한 참여에 대한 기대를 밝혔지만 북한은 문 대통령 제안의 계기가 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 자체에서마저 한국과 협력할 뜻을 전혀 보이지 않은 채 한국이 제안하는 모든 방역 관련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북한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강 장관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최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나서 “앞뒤 계산 없는 망언”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할 정도다.
이날 회의로 협력체가 출범했다지만 첫 만남부터 고위급이 아닌 과장급 당국자가 참여했고 형태도 반관반민(1.5트랙)이어서 무게감이 크게 떨어졌다. 미국 역시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계속 참여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한이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협의체를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외교부가 문 대통령의 제안을 이행하겠다며 연내 출범을 위해 지나치게 서두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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