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예전부터 우리도 ‘뉴욕 리뷰 오브 북스’나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같은 서평지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여러 교수들과 함께 ‘서울 리뷰 오브 북스’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막상 일을 하려니 첩첩산중이었다. 출판사에 준 원고가 책이 되어 나올 때까지 편집자와 상의를 한 적은 많아도 실제 책이나 잡지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자존심 강한 편집위원들의 의견을 모으며 나가야 했고, 디자인과 마케팅을 위해 인력을 고용했으며, 자금을 만들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받았다. 몇 달 사이에 교수에서 편집장으로, 편집장에서 잡지사 대표가 됐다. 그러다 이명이 갑자기 심해졌다. 귀에서 ‘삐’ 소리가 아니라 ‘따르릉’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 성인병 없이 살았는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중 적어도 하나는 찾아오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왜 사서 고생하는지 스스로에게 열 번도 더 물었다.
맥이 다 빠져 있던 어느 날, 한 블로그에서 괴테가 썼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위험하게 살고 있다면 너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Live dangerously and you live right).” 이 짧은 문장을 곱씹으니 오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 나는 본래 위험하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지. 벌어먹기 힘든 분야를 공부하고, 남들이 기피하는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없는 길을 만들며 가는 게 나라는 인간이야. 이렇게 생각하니 기운이 났다. 그리고 이 문장을 크게 인쇄해서 벽에 떡하니 붙였다.
찾아보니 괴테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니체가 비슷한 얘기를 했다(“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 경사면에 도시를 지어라”). 그렇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 짧은 문장이 이미 내게 훅 들어와 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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