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단일화의 아이콘’이었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박원순 전 시장이 3선 도전을 선언한 상황.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선 김문수 후보가, 바른미래당에선 안철수 후보가 나서면서 줄곧 단일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두 후보의 지지율을 합쳐도 박 전 시장의 지지율을 넘어서기 어려운 구도가 선거 기간 내내 펼쳐졌지만 단일화 논의는 별 진척 없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급기야 선거 하루 전날 한국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김성태 전 의원이 “안 후보가 좌편향적 정치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독단을 막기 위한 위대한 결심을 하라”며 단일화 촉구 기자회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후보 본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선거 승리에 절박하지 않았다. 김 후보는 당시 기자들을 만나 “단일화 전략이니 뭐니 생각한 건 없다”고 하며 단일화를 외면했고, 안 후보 주변엔 “2등만 해도 당 대표 선거에 나갈 명분은 된다”고 얘기하는 인사들이 넘쳐났다. 참여에 의의를 둔 ‘올림픽 정신’으로 서울시장 자리를 헌납한 셈이다.
2018년의 단일화 논의를 포함해 안 대표는 10년 정치를 하면서 모두 다섯 차례 단일화 이슈의 주인공이 됐다. 박 전 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문 대통령과의 2012년 대선 단일화 협상, ‘불발탄’에 그친 홍준표-안철수 후보의 2017년 대선 단일화 압박, 2018년 김문수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 그리고 2021년 다시 국민의힘과의 단일화 ‘밀당(밀고 당기기)’의 중심에 섰다. 자의반 타의반 ‘단일화 5수생’이 된 셈이다.
안 대표를 둘러싼 앞선 네 차례의 단일화 논의 중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제외하면 모두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다. 어느 진영이든 안 대표와 단일화 협상에 나선 쪽은 선거 후 늘 빈손이었다. 물론 단일화 실패의 귀책사유는 양쪽에 공히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잠재적 경쟁자인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안 대표가 단일화를 하겠다고는 했지만 끝까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 건 야권의 일반적인 정서다.
그렇다면 93일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미 시작된 야권 단일화 레이스를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안 대표의 앞선 네 차례 단일화의 교훈 속에 다 들어 있다.
우선 정치적 유연성과 창조적 반전을 이뤄내지 못한 단일화 논의는 모두 실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가 남아 있던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와의 단일화나, 2018년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후보와의 단일화는 애초부터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는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최근 안 대표나 국민의힘은 ‘반문연대’를 꺼내고 있지만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때도 단일화로 반문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후보들 모두 “3자, 4자 구도면 내가 이긴다”는 완고함을 보였고 그 결과 선거는 예고된 패배로 끝났다. 굳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P연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유연성이 실종된 단일화가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정치권의 상식에 가깝다.
두 번째는 정치적 헌신에서 주는 감동이다. 안 대표는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선 지지율 50%의 안 대표가 5%의 박 전 시장에게 조건 없이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드라마로 선거 승리를 이끌었지만 2012년 문 대통령과의 단일화 협상에선 안 대표가 선거 막판 미국으로 출국해 버리면서 실패로 마무리됐다. 지지층을 통합해 시너지를 낸다는 목적을 상실한 단일화는 파괴력을 갖기 어렵다.
정치적 유연성과 반전, 헌신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보다 절박한 의지다. 2018년의 단일화의 한 장면처럼, 그동안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어 본 적이 있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벌써부터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는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안 대표 간 단일화 신경전에서도 더 절박한 권력의지를 가진 쪽이 승리의 조건들을 하나씩 꿰어 나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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