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 판결[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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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만큼 논쟁적인 옷도 없다.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 차림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며 민망해하는 남자들이 많다. 하지만 여자들에겐 운동할 때는 물론이고 등산 가거나 출근할 때도 두루 입는 멀티웨어다. 레깅스 차림의 여성을 몰래 찍으면 유죄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레깅스만큼 ‘레깅스 판결’ 논쟁도 뜨겁다.

▷2018년 A 씨는 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다 걸려 성폭력처벌법의 ‘카메라 이용 촬영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벌금 70만 원, 2심에선 무죄 판결이 나왔다. 레깅스를 입고 있어 신체 노출이 없었고, 통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야를 촬영한 것이며, 피해자가 “기분 더러웠다”고 했는데 이는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레깅스가 일상복이라는 점도 무죄의 근거가 됐다.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왜 여성들이 레깅스를 일상복처럼 입고 버스까지 타겠느냐는 뜻이었다.

▷6일 나온 대법원 판결은 달랐다. 엉덩이와 허벅지 굴곡도 신체 노출이고, 엉덩이나 가슴 등 특정 부위를 부각시키지 않고도 불법 촬영이 될 수 있으며, 일상복이든 뭐든 성적 대상화가 되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고, 수치심이란 ‘빡치심’도 포함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여성학자들은 성적 수치심이 정조 개념에 뿌리를 둔 용어이니 대신 ‘성적 불쾌감’이라 표현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남성 커뮤니티는 들끓고 있다. “몰래 촬영이니 불법이 맞다”는 소수 의견도 있지만 “‘거리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도 있는데 공공장소에서의 촬영을 금지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민사상 초상권 침해로 끝낼 일을 왜 성범죄로 처벌하느냐”는 반론이 거세다. 레깅스 몰카 처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서울에서 레깅스 차림의 여성을 뒤따라가며 휴대전화로 촬영한 남성이 벌금 300만 원 형을 받았고, 같은 해 인천 지하철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찍다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남성도 있다.

▷그냥 보는 것은 괜찮을까. 여성의 몸을 훑어보며 불쾌감을 유발하는 경우를 ‘시선 폭력’, 좀 더 강하게는 ‘시선 강간’이라고 한다. 일본에선 ‘시간(視姦)’이라 줄여 말하는데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수치스럽거나 불안하게 하는 언동을 금지하는 ‘민폐(迷惑·메이와쿠) 금지 조례’를 적용하면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국내법에는 시선 폭력을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입으면서도 ‘성적 대상이 되지 않을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다. 무례한 시선을 보내면서 “보는 것도 죄냐”고 따져 물을 수는 없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레깅스#여성#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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