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계속 빚을 진다[광화문에서/신광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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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차장
신광영 사회부 차장
7, 8일 치르는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 응시자 중에는 합격해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응시자가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모 씨다.

조 씨는 어려서부터 장래 희망이 외과의사였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외국어고와 명문 사립대를 거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에서 공부하며 14년 만에 꿈에 거의 다가섰다.

그에겐 대학의 생리를 아는 교수 부모의 열성적인 지원이 있었다. 조 씨가 고교 1학년일 때 어머니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방학 2주밖에 없으나 리서치 페이퍼 반드시 쓰도록 할 것. 졸업할 때까지 2개 나오게.’

정 교수는 목표대로 의학 논문 두 건에 고교생 딸의 이름을 올렸다. 조 씨가 2013년 서울대 의전원에 지원하며 낸 자기소개서 경력란은 각종 연구소 인턴, 동양대 총장 명의 최우수봉사상 등 허위 스펙들로 줄줄이 채워져 있다. 1년 넘게 이어진 정 교수 재판은 조 씨의 ‘7대 스펙’을 한 줄 한 줄 지워가는 과정이었다. 재판이 끝났을 때 자기소개서의 풍성했던 경력란은 거의 공란이 됐다.

정 교수가 총장 표창장까지 위조하며 온갖 반칙을 감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 씨가 간발의 차로 서울대 의전원에 떨어지고, 역시나 간발의 차로 부산대 의전원에 붙는 과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 씨는 70명을 뽑는 서울대 전형에서 72등이었다. 100점 만점에 0.05점 차로 떨어졌다. 부산대에서는 불합격자 중 1등과 고작 1.16점 차였다.

시험 점수는 실력에 따라 매년 갱신되지만 잘 만든 스펙은 해를 거듭해도 감가상각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정 교수 재판에서 확인됐다. 조 씨는 대학입시에 쓴 스펙을 4년 뒤 의전원 입시 때도 요긴하게 재활용했다. 조 씨가 다녔던 외고 유학반에는 ‘학부모 인턴십 프로그램’이란 게 있었다. 엄마들이 자녀의 입시용 스펙을 쌓아주려고 남편 또는 자신이 소속된 대학이나 공공기관, 기업에서 인턴을 할 수 있게 서로 주선해줬다. 보통의 부모들은 엄두도 못 낼, 그들만의 ‘스펙 품앗이’ 시스템이었다.

숙명여고 교무부장 아버지와 함께 문제 유출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의 재판에서 검사는 실형을 구형하며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거짓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했다. 두 자매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진리일 텐데 쌍둥이 자매와 조 씨는 교육자인 부모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조 씨는 지난해 9월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통과해 7일 필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가 국시 시험장에 오기까지 순수한 노력으로 이룬 결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결실은 거짓으로 덧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된 정 교수의 입시비리가 유죄로 확정되면 조 씨의 의전원 합격이 취소될 수 있고 자연히 의사 국시 합격도 무효화된다. 입시의 성공이 국시의 실패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대한 빚이 쌓인다.” 화제를 모았던 미드 ‘체르노빌’에서 정부가 원전 폭발 가능성을 알면서 숨겼다고 폭로한 과학자의 이 대사처럼, 진실에 진 빚이 불어나면 갚아야 할 때가 온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의사 국가시험#조국#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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