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올해 75조 원 적자예산 편성… 커지는 정부부채비율 급증 우려
日, 경기 살아날 때 적자 해소 경험… 한정된 재원 균형 맞춰 운용해야
지난해 말 국회에서 2021년 정부 예산이 의결·확정되었다. 총수입 482조6000억 원에 총지출이 558조 원이므로 75조40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할 예정이다. 당연히 정부 부채도 늘어나게 된다. 기획재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2024년 60% 정도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불과 2년 전까지 40%를 마지노선처럼 지키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불과 수년 만에 20%포인트 증가하는 것이다. 이러다가 우리도 일본처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들이 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은 GDP 대비 200%가 넘는 정부 부채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이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 비율이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험을 보면, 지금은 정부 부채 증가를 너무 겁낼 때가 아니다. 일본에서도 재정건전성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정부 부채 비율이 70%까지 오르자 일본 정부는 이듬해부터 강력한 재정건전화 정책을 추진했다. 세출을 줄이고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해 세입을 늘렸다. 그 결과 재정 상황이 호전됐지만 일시적 개선에 불과했다.
정부의 강력한 긴축정책이 경기를 냉각시켰고,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터지자 1998년 조세수입이 1997년은 고사하고 1996년보다도 감소했다. 2000년 들어 정부 부채가 GDP의 100%를 넘자 2001년부터 국채 발행액이 매년 30조 엔을 넘지 않게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1년 만에 그 공약을 포기했다. 경기 악화로 세입이 줄자 도저히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부 부채 비율은 그 후 불과 수년 만에 150%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정부 부채 비율이 매년 증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의 몇 년, 그리고 2010년대 중후반 몇 년 동안은 정부 부채 비율이 횡보하거나 하락했다.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경기가 살아나자 GDP와 조세수입이 증가해 부채 비율이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일본의 경험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재정건전성보다는 경기 부양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편 일본은 왜 그렇게 과도한 정부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을까? 일본 재무성 보고서에 따르면 세입에서는 경기침체로 인한 조세수입 감소가, 세출에서는 과도한 복지지출이 주요인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복지제도가 서유럽보다 나은 것도 아닌데, 서유럽보다 훨씬 높은 정부 부채 비율의 원인을 왜 복지지출에서 찾는 것일까? 서유럽에서는 복지지출과 세금이 같이 증가했지만 일본에서는 복지지출 증가가 세금 증가보다 가팔랐기 때문이다. 일본 연금 제도는 경기침체를 겪기 전에 그리고 고령화가 현실로 닥치기 전에 그 기틀이 마련되었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바탕을 둔 제도는 매년 천문학적인 적자를 만들었고 정부 예산으로 그 적자를 메우면서 재정적자 누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한국도 사회보장성기금에서 적자가 나기 시작하면 정부 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정부 부채 증가를 견딜 수 있을까? 정부가 빚을 내려면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누군가가 사야 하고, 그 누군가는 대개의 경우 국내 금융기관이다. 국내 금융기관의 주 자금원은 가계저축이고, 한국 가계의 순금융자산은 GDP의 100%를 조금 상회한다. 일본의 거대한 정부 부채가 일본 국내에서 소화될 수 있는 것은 가계의 순금융자산이 GDP의 250%를 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 부채의 한계는 GDP의 100% 정도가 될 것이고, 기재부 전망대로라면 2024년에 GDP의 60%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한계에서 멀지 않게 된다.
따라서 지금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을 용인해야 하지만, 물밑에서는 사회보장성기금의 운용과 재원을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한정된 세수를 선심용 국책사업에 낭비하지 않는 일은 두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과 관료조직 간에는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정부 지출을 늘리고 싶어 하고 정부 예산을 담당한 관료는 적자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유연하면서도 위험하지 않은 재정 운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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