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일 공개된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핵보유국 지위로 적대세력 위협이 종식될 때까지 군사적 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핵무기 남용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핵무기 선제 및 보복 타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이어진 비핵화 협상 기조를 뒤엎고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정은은 특히 “최대 주적은 미국”이라며 20일 출범을 앞둔 바이든 정부에 공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협박에 가까운 핵무력 극대화 계획을 상세히 공개했다. 먼저 핵 선제·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하기 위해 1만5000km 사정권 표적에 대한 명중률을 높이겠다고 했다. 이 정도 사정권이면 미국 본토 대부분이 포함된다. 핵추진 잠수함 개발 내용도 언급했는데, 오랫동안 잠항이 가능해 항로 탐지가 어려운 핵잠수함은 은밀하게 미 본토도 기습 타격할 수 있는 전략 무기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앞으로 북-미 협상이 진행될 경우 구도를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으로 방향 전환하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북한이 군축 협상을 벌인다면 핵보유국 위상을 굳히는 것이어서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김정은은 우리 정부에 대해선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3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제안한 방역, 인도주의적 협력 등을 비본질적인 문제로 치부했다. 말을 안 들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라는 비대칭 전력으로 판을 깰 수 있다는 으름장인 셈이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번영의 새 출발점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북한은 대화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은 핵협박을 하고 있는데도 여권은 남북관계 복원을 기대하는 장밋빛 환상만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자세 외교는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북한이 더 제멋대로 굴도록 할 뿐이라는 사실을 정부와 여당은 알아야 한다.
김정은과 잘 통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곧 퇴임하면 ‘북-미 정상 로맨스’도 막이 내린다. 정부는 김정은의 핵위협에 대응해 바이든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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