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진이 형이 또 해냈다. 이달 초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공학계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는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정됐다. 산업계 인사들이 뽑히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김 대표의 선정이 눈길을 끈 건 ‘게임업계 최초’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공학계에서 게임산업을 ‘동료’로 인정했다는 느낌이다.
1인칭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로 유명한 스마일게이트의 권혁빈 창업자도 지난해 12월 게임업계 최초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의 최고상 격이다. 매년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국정감사장에 불려나와 ‘불량식품 파는 업자’나 ‘게임중독의 주범’ 같은 취급을 받으며 의원들의 매서운 질타를 듣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 속에 게임업계의 성장은 눈부셨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게임 이용 시간이 급격하게 늘었고,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산업으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9% 이상 성장해 17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게임업체들은 국내를 넘어 북미, 유럽, 일본 등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정보기술(IT)은 물론이고 영화 엔터테인먼트 웹툰 등 콘텐츠 산업과의 합작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주도주로 떠올랐다. 한국과 일본 증시에서 3N(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의 시가총액은 8일 종가 기준으로 63조7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아직 축배를 들기엔 조심스럽다. 우선 46조 원 규모로 세계 최대 게임시장 가운데 하나인 중국의 빗장이 걷히지 않았다. 지난해 말 중국 정부가 약 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게임에 ‘판호(版號·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를 내줬지만 일회성에 그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 신규 진출 길이 막힌 사이 되레 중국 게임업체들은 지난해 한국에서 약 1조5000억 원을 챙겨 갔다.
중국 시장의 문이 열린다고 해도 걱정이다. 한국산 게임이라면 덮어놓고 열광하던 몇 년 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중국 게임 자체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원신’ ‘라이즈 오브 킹덤즈’ 등 최근 빅히트한 중국 게임은 그래픽, 게임성, 캐릭터 등 기술력뿐만 아니라 서비스 운영 능력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 이제 ‘대륙의 실수’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다. 우리 게임업체들이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
업계도 노력해야겠지만 정부도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아직은 미흡하다. 문을 걸어 잠근 중국에 대해 정부는 “노력은 하고 있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지난해 5월 정부가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내놨지만 아직 현장에선 와닿지 않는 분위기다. 게임산업을 지원한다는 법률 전부 개정안엔 오히려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화’ 등 업계를 옥죌 수 있는 새로운 규제가 숨어 있다.
훈장도 좋고 상장도 좋다. 하지만 정부가 게임산업의 긍정적 가치를 확산하는 데 앞장서고, 낡은 규제 개선과 다양한 게임 생태계 지원에 나선다면 게임업계엔 이보다 큰 칭찬과 격려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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