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변호사시험 첫날인 5일 전국 대학 고사장에선 서로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책상 위에 시험지와 답안지, 법전 하나가 놓여 있는 모습은 예년과 같았다. 하지만 몇몇 고사장의 학생들은 법전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면서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다른 고사장 학생들은 눈으로 법전을 보면서 답안을 써 내려갔다. 수험생들이 “법전에 밑줄을 긋는 건 시험 부정행위”라고 항의하자 법무부는 시험을 치르지 않은 휴일인 7일 전체 응시자를 상대로 메시지를 보냈다. “8, 9일 시험에선 법전에 밑줄을 그어도 되지만 메모를 하거나 포스트잇을 붙여선 안 된다.”
시험용 법전에 밑줄을 긋지 않는 것은 수험생들 사이에선 상식으로 통했다. 법무부가 2012년부터 매년 공지한 응시자 준수사항 공고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법전에 줄 긋기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무부는 각 과목 시험을 마칠 때마다 법전을 회수한 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수험생에게 나눠 주는 방식으로 부정행위를 방지해 왔다.
법무부는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한 수험생이 나흘 동안 한 권의 법전만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사정이 달라졌다고 해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밑줄을 긋지 말라는 공고는 올해 시험에선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의 해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시험감독관은 10일 로스쿨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시험 이틀째인 6일 고사장 책임관으로부터 법전에 밑줄을 그어도 되지만 적극 알리지는 말라고 들었다”며 “줄 긋기가 원래 허용되는 것이었다면 어째서 수험생에게 적극 알리지 말라고 한 건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 감독관은 “8일에는 수험생들에게 ‘밑줄이 아닌 동그라미, 별표를 그리면 안 된다’고 방송했다. 하지만 감독관들은 ‘법전에서 동그라미, 별표를 발견하더라도 주의만 주라’는 지침을 전해 들었다. 법무부가 공정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올해 변호사시험에서는 ‘위헌 논란’ ‘출제 불공정 의혹’에 이어 일부 수험생들이 법전에 밑줄을 그으면서 답안을 작성하는 등 부정행위 의혹까지 제기됐다. 앞서 법무부는 시험 하루 전인 4일 밤 급하게 응시 절차를 바꿨다. 헌법재판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의 응시를 제한한 공고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험 도중엔 연세대 로스쿨의 교내 시험 문제가 변호사시험 문제로 그대로 출제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를 앞두고 있다.
변호사시험은 누구나 일생에 5번만 치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무엇보다 공정성이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 당장 불거지는 논란만 피해 가겠다는 식의 임기응변식 대응으로는 법무부가 공정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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