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와 사라진 ‘통합’[청와대 풍향계/황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2일 03시 00분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돌봄종사자들과의 영상 간담회를 열고 돌봄종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돌봄종사자들과의 영상 간담회를 열고 돌봄종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황형준 정치부 기자
황형준 정치부 기자
“사면(赦免) 논란으로 여권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 A 의원은 최근 여권의 상황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새해 벽두부터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자고 제안한 뒤 불거진 여당 내 논란이 오히려 여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1일 “적절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밝히자 당 강성 지지층들은 “이 대표가 탈당하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당 지도부도 “전직 대통령들의 반성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며 당사자들에게 공을 넘겼고 보수 야당에선 “공개 반성문을 쓰라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여권 내부에선 ‘진보적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 대표가 사면 카드를 꺼낸 것을 두고 국민통합이라는 명분과 중도층 확보라는 실리를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제안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뒤처지자 조급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이 대표 측 핵심 의원은 “이 대표가 잃을 건 없다. 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 형 확정 이후 사면 얘기가 나오면서 질질 끌려가는 것보단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면 논란 이후 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서 이 대표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무총리 시절 문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과 연동돼 여권 내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처음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추월당한 뒤 이 지사와 오차범위 바깥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각을 세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2위를 내주고 3위에 그친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을 단행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청와대의 기류가 묘하다. 당초 이 대표가 사면 카드를 꺼냈을 당시 청와대는 처음엔 “박 전 대통령의 형이 확정되는 14일 이후 이 대표가 실제 건의한 뒤 논의할 문제”라며 탐색전을 펼쳤다.

문 대통령은 7일 신년인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통합”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5일 대한불교조계종을 예방한 자리에서 “국민의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마음’을 거론한 직후여서 문 대통령의 사면 단행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지지층의 강한 반대가 확인되자 화들짝 놀라는 분위기다. 한국갤럽이 5∼7일 조사한 결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현 정부의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해 민주당 지지층의 75%가 반대했고 전체 여론도 찬성(37%)보다 반대(54%)가 더 많았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11일 신년사에서 사면에 대한 언급은 물론이고 ‘통합’이라는 단어를 아예 언급하지 않고 ‘포용’으로 표현을 바꿨다. ‘통합’이라는 표현이 “국민통합 차원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을 단행할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지자 ‘포용’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와대가 이처럼 선을 그으면서 문 대통령이 결국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해 ‘국민 의견이 중요하다’는 원칙적 언급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 나온다.

다시 A 의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A 의원은 청와대의 3차 개각에 대해 “협치 내각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전문 인사는 치명적이다. 국민들과 싸우자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나”라며 “병사인 174명 의원이 뛰어봤자 장수인 대통령이 무너지면 끝이다. 남은 건 문 대통령이 인적 쇄신을 혁신적으로 하면서 ‘마지막으로 심기일전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인 출신이자 소통형인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새로 임명되면서 청와대 내부에도 쇄신 분위기가 감지된다. 조만간 이뤄질 3차 개각과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5년 차 정부의 향방과 성패를 가름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지지층만 바라보는 ‘팬덤 정치’에 취하면 국민통합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



#더불어민주당#전직 대통령#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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