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의 ‘정인이는 왜 죽었나?’편을 시청했다. 정인이가 사망하기 전날 어린이집에서 보였던 행동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생후 11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데, 내 딸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큰 소리로 울거나 웃는 등 즉각적인 의사 표시를 한다. 모든 걸 포기한 듯한 정인이의 표정과 행동은 같은 또래인 내 딸과 대비되어 가슴이 더 먹먹했다.
누리꾼들은 즉각 행동에 옮겨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을 펼쳤고, 담당 재판부에는 수천 장의 진정서가 제출되었다. 정인이 사건이 사회적 주목을 받자, 정치권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동 학대범의 법정형을 높이고 신상 공개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으레 그렇듯 발의된 법률안은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따서 ‘정인이 법’으로 불렸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라디오 및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는 법정형 하한선을 올리는 법을 만들 게 아니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양형 기준을 올릴 수 있도록 의견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2의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광역 단위로 아동학대범죄 특별수사대를 조직하여 전문성 있는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식재산권 침해 형사사건은 보통 경찰서 경제팀에 배정되는데, 일반 형사사건이 아니다 보니 수사관에게 특허발명의 권리 범위 같은 기초 부분을 설명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지난해부터 특허청 특별사법경찰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특허청 주무관에게 사법경찰관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기술심리관 출신 주무관들은 조사를 받기도 전에 벌써 쟁점 파악을 마친 상태였고, 역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전문성, 공정성, 사건처리 속도, 어느 하나 흠잡을 곳 없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김 변호사의 의견은 너무나 타당하다. 굳이 사족을 붙인다면, 특허청 특별사법경찰관 제도처럼 보건복지부 담당 부서에 사법경찰관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특별사법경찰관 지역사무소로 활용된다면, 조직적으로 운영되면서도 업무의 과중을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아동학대 발생 시 즉시 분리와 같은 응급조치도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며, 응급조치에 필요한 아동 쉼터도 통합적으로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 재판부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며, 진정서를 인스타그램에 게재하여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에 동참했다. 수많은 진정인은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느끼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이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진정서를 제출했을 것이다.
정인이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 사건을 곱씹으며 기억해야 한다. 전문성을 가진 이들의 의견이 제도에 반영되도록 힘을 보태며 오랜 시간 공론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는 정인이에게 했던 ‘우리가 바꿀게’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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