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정치 평론가 A 씨와 점심을 했다. 30년 이상 총리관저와 국회를 취재해 온 그는 “총리들의 단골 식당을 소개해 주겠다”면서 도쿄 아카사카의 한 호텔 식당을 예약했다. 총리관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었다.
A 씨에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자주 먹는 요리’를 물었더니 “주로 샐러드와 수프만 먹고 30분 만에 일어서 또 다른 회식 장소로 간다. 메인 요리를 먹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먹는다는 중국 요리 파코멘을 골랐다. 뜨거운 면 요리에 돼지고기 튀김을 얹었는데 가격은 세금과 서비스 이용료를 포함해 3388엔(약 3만6000원). 입에 잘 맞았다.
스가 총리가 식사를 두 번이나 할 만큼 정치인들에게 있어 회식은 새로운 정보를 얻고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다. 일본에 ‘요정(料亭) 정치’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과거 정치인들의 주된 회식 장소는 요정이었다.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고, 방은 미술품으로 장식돼 있으며 게이샤(藝者·춤과 노래 등 기예를 선보이는 기생)를 부를 수도 있는, 그런 고급 음식점이다.
하지만 요정을 드나드는 정치인의 모습이 유권자 눈에 좋게 보일 리 없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는 “낡은 요정 정치와 결별하겠다”고 선언하고 요정 출입을 끊었다.
지금은 요정 정치가 없어졌을까. 아닌 것 같다. 무대를 요정에서 호텔로 바꾼 ‘회식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유력 일간지의 한 간부는 “정치인들에게 회식은 목숨 줄과도 같다. 절대 끊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여당 의원은 특히 기업 관계자의 회식 요청을 자주 받는다. 기업인들은 정치인과의 회식 자리에서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자신들의 요청이 정책에 반영되면 정치자금 파티의 파티권을 대거 구매해 감사를 표시한다. 파티권 구매는 합법적 기부에 해당한다.
소위 흙수저 정치인은 회식 자리를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회로 활용한다. 술을 따르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남자 게이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끼리 하는 회식 자리도 많다. 이번에는 내가 사고, 다음에는 네가 사라면서 동료 의식을 높인다. 국회에서 무리한 안건을 통과시켜야 하거나, 선거에 도움을 요청할 때 회식 인맥은 중요하게 활용된다. 그런 회식 정치가 최근 기어코 사고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5인 이상 회식’을 자제토록 국민에게 요청했다. 그 직후 스가 총리는 8명과,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올림픽담당상은 6명과 회식을 한 사실이 언론에 발각됐다. 일본 여야가 ‘오후 8시까지 4명 이하 참석’이란 조건을 지키면 국회의원들은 회식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고자 한 것도 국민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최종 무산됐다.
언론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도 많다. 8선 중의원 의원으로 오키나와담당상을 지냈던 미야코시 미쓰히로(宮腰光寬) 씨는 지난해 말 지역구인 도야마 시내에서 어업 관계자 약 30명이 모인 송년회에 참석했다. 그는 음주 상태로 넘어지면서 눈 위를 다쳐 병원에 실려 갔다.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전 IT담당상도 지난해 말 지역구인 오사카에서 약 80명이 모인 정치자금 파티를 열었다. 그 후 코로나19에 감염돼 구설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스가 총리가 7일 긴급사태를 재선언했다. 스가 총리는 “음식점은 오후 8시까지만 영업해 달라” “국민들은 오후 8시 이후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런 호소가 국민들 귀에 설득력 있게 들릴까. ‘내로남불’로 들리진 않을까. 최근 도쿄 시내 인파가 작년 4월 첫 긴급사태 발령 때만큼 줄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실망감이 읽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