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도로사업소에서 제설차량을 운행하는 유보일 주무관(57)은 사무실 의자에서 쪽잠을 자다 뻐근해진 몸을 일으켰다. 전날 오후 9시경 시작한 1차 제설작업을 마치고 들어온 지 3시간쯤 됐을 때였다. 도로보수과의 당직 근무자가 “인천 영종도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며 출동을 준비시켰다.
뒷목을 주무르며 차에 오른 유 주무관은 17일부터 이미 21시간가량 연속 근무하는 중이었다. 서울시가 17일 정오경 제설 1단계를 발령하자마자 사업소로 출근해 집에는 가지도 못했다.
“어디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나요. 눈 올까 봐 계속 걱정도 되고…. 짬짬이 하늘만 원망스레 쳐다볼 뿐이죠.”
이날 서울엔 2∼7cm가량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보됐지만, 정작 내린 건 1cm 안팎. 그렇다고 일이 수월해지는 것도 아니다. 제설작업 12년 차인 유 주무관은 새벽녘 행주 나들목(IC) 인근에서 출발해 올림픽대교 상·하행선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작업을 약 2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그는 “오늘처럼 눈이 조금만 내려도 업무량은 비슷하다”며 “날씨가 추우면 도로가 금세 얼어붙어 눈 예보 5cm 이상이면 꼭 제설제를 뿌려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설차량 기사들이 진짜 힘든 건 노동 강도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을 대하는 시민들의 차가운 태도다. 실제로 유 주무관을 따라 현장에 갔더니, 제설제를 뿌리는 제설차량을 향해 거칠게 경적을 울리는 이들이 상당했다. 위험천만하게 차로를 바꾸더니 스치듯이 쌩 지나가는 승용차도 있었다.
한 제설차량 기사도 “도로에 골고루 뿌리려면 시속 40∼50km로 서행할 수밖에 없는데 시민들이 굉장히 불쾌해한다”고 아쉬워했다. 한 제설업체 관계자도 “길에 뿌린 제설제가 튀어 차 도색이 벗겨졌다며 물어달라고 항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문제는 적절한 제설제 살포가 이뤄지지 않으면 6일 수도권에서 벌어졌던 ‘퇴근길 대란’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서울시는 오후 1시 20분경 기상청이 큰눈을 예고했지만, 5시경에야 제설차량을 현장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투입 자체도 늦었지만 퇴근시간에 차가 몰리면 현장에 갈 수 없다. 늦어도 서너 시간 전에 살포 작업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답답한 도로. 느릿느릿 길을 막는 차를 보면 울화통이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린 걸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그 묵묵한 노력이 없었을 때, 어떤 상황이 생기는지는 6일 우리 모두가 직접 겪었다. 대비가 미흡했던 당국은 비난하되, 현장에서 고생하는 이들에겐 돌을 던지지 말자. 그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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