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으로 마음 읽기[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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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만남은 눈(眼)과 눈으로 시작해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눈 맞춤은 영화로 치면 예고편입니다.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물론 내 존재도 더 의식하게 됩니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관찰 대상이 된다는 일은 불편합니다. 상점에 들어간 나를 판매원이 지켜보고 있으면 물건을 여유 있게 살피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의 눈길이 내 일을 방해합니다. “찾으시는 것이 있으세요?”라고 물을 때 재빨리 “그냥 둘러보려고요”라고 합니다.

시험에서는 면접관과 나 사이의 눈 맞춤을 관리해야 합니다. 눈을 마주칠 시점과 피할 시점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대답이 막힐 때는 잠시 눈길을 벗어나야 머리가 돌아갑니다. 시선을 의식하면 생각이 막힙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모나리자 감상을 포기했습니다. 수백 명이 몰려 있었습니다. ‘미소의 힘’일까요? ‘눈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모나리자가 주는 눈길이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눈길의 느낌은 마음에 파동을 일으킵니다.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은 ‘지진’입니다.

‘눈동자 춤’도 있습니다. 동공은 흥분하면 확장하고 지루하면 수축합니다. 그 사람의 눈과 내 눈이 만나서 춤이 시작됩니다. 두 사람의 동공이 같이 확장하면 호감이고, 같이 수축하면 비호감입니다. 낭만적으로 들리시나요? 반론도 있습니다. 단순히 밝기에 따른 반응이라는, 찬물을 끼얹는 해석이 있습니다. 보는 눈이 정확해야 낭패를 면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추가하면, 서양 여성들이 자신의 매력을 동공 확장으로 키우려고 눈에 넣었던 물질이 있습니다. 식물 추출액인데 이름이 ‘벨라도나’(아름다운 여인)입니다.

매력의 관점에서 눈길을 아래로 돌리는 행동을 말하자면 여성들은 장점, 남성들은 단점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남성과 여성의 만남에서 ‘눈길’이 지닌 의미의 차이가 남녀 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알고 있으면 일상에서 도움이 되고 오해를 줄일 것 같습니다.

세상의 눈이 무섭지만 지나치게 의식한다면 자신의 삶을 잃어버립니다. 마음을 읽는 눈이 밝아야 참된 자기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눈을 뒤집고 돈과 힘을 얻으려는 세상에서, 눈에 어른대는 세속의 가치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눈이 맑아야 합니다. 삶의 방향을 눈을 씻고 보아야 합니다.

눈빛은 마음이 쓴 편지입니다. 사람은 눈 맞춤의 여부, 정도에 따라 다른 사람을 평가합니다. 빤히 쳐다보는 사람에게는 혐오감을 느낍니다. 눈을 찡그립니다. 눈길을 피하는 사람은 의심합니다.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면 눈 마주침에서 관계의 가능성이 출발합니다. 눈을 맞추는 사람의 말은 믿으려 합니다. 사람이 솔직하고, 분명하고, 성실해 보입니다. 눈을 피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덜 갑니다. 눈을 피하면 자신을 감출 수 있다는 어린 시절 환상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까요? 눈과 눈의 연결이 끊어지면 관계가 끊어지는 겁니다. 눈을 피하는 사람을 진정성이 부족하고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눈 맞춤은 강렬한 경험입니다.

존경과 순종의 표시로 눈길을 피하기도 합니다. 상하관계에서 흔히 그렇습니다. 강자는 상대를 오래 쳐다볼 수 있으나 약자는 눈길을 피합니다. 빤히 쳐다볼 수 있으면 강자라는 착각 때문에 길거리에서 불필요한 싸움이 일어납니다. 눈을 피하면 수줍음, 순종, 무관심을 뜻합니다. 빤히 계속 보면 불손, 반항, 위협입니다. 두렵지 않다는,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표현입니다. 그러니 아무 뜻 없이 빤히 보다가는 오해를 삽니다. 빤히 쳐다보는 상대는 곁에 두기 위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눈은 마음의 전령입니다. 모든 이해의 시작은 눈에서 비롯됩니다. ‘보다’라는 단어에 알다, 읽다, 살피다, 만나다, 헤아리다, 진찰하다, 구독하다, 조금 먹다, 발견하다, 살피다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음은 당연합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눈빛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 때문에 말할 수 없으니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반대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눈길도 있습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듯 대하니 막상 당하면 끔찍합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칩니다. 어두운 방에서 충분히 서로 쳐다보고 있으면 ‘해리(解離)’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현실감에서 벗어나면서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지고 청각과 시각에 변화가 온다고 합니다. 낭만적인 분위기는 그래서 어두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한곳을 집요하게 쳐다보다가 다른 곳을 놓칩니다. 중요한 일이라면 마음이 아플 겁니다. ‘한눈팔다’라는 표현의 뜻은 ‘마땅히 볼 데를 보지 아니하고 딴 데를 보다’입니다. 창밖 나뭇가지에 앉아 나무를 흔드는 작은 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배울 것이 있습니다. 노려보고 싶은 대상에게서 눈길을 돌릴 수 있다면 말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만남#눈#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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