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희망[이은화의 미술시간]〈146〉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1일 03시 00분


조지 프레더릭 와츠 ‘희망’, 1886년.
조지 프레더릭 와츠 ‘희망’, 1886년.
희망은 어떤 모습일까? 서양미술에서 희망은 꽃이나 닻을 든 여성으로 종종 묘사돼 왔다. 그런데 19세기 영국 상징주의 화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는 전혀 다르게 표현했다. 붕대로 눈을 가린 여자가 커다란 구체 위에 홀로 앉아 줄 끊어진 리라를 연주하고 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황량하다. 고독과 절망으로 가득한 이 그림이 어떻게 희망을 상징하는 걸까?

한때 ‘영국의 미켈란젤로’로 불렸던 와츠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지만, 여왕이 주는 남작 작위를 두 번이나 거절할 정도로 세속적 명예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는 우의적이고 신화적인 주제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중 ‘희망’이 가장 유명하다. 그림 속 여자는 지금 지구 위에 외롭게 앉아 있다. 리라의 줄은 한 줄만 빼고 모두 다 끊어졌다. 눈은 멀었고, 옷은 누추하고, 몸은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여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에 집중하고 있다. 그 모습을 뒤쪽의 별빛이 희미하게 비춘다.

당시 영국에선 긴 경제 불황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싹트고, 국가의 자부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화가 개인적으로도 갓 태어난 손녀를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처연한 여인. 그것이 바로 화가가 본 희망의 모습이었다.

그림이 공개되자 영국 비평가들은 종말론적이라며 싫어했지만, 대중은 감동했다. 특히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희망’ 복제화를 집에 걸어 두었고,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59년 설교에서 이 그림을 소개하며 희망을 전파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 그림에서 착안한 ‘담대한 희망’을 정치 연설뿐 아니라 자서전 제목으로도 사용했다.

희망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늘 고난 뒤에 찾아온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는 한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에 감동했던 것도 바로 이런 위안의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희망#영국 상징주의#오바마#마틴 루서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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