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귀여운 ‘번역기’들이 지닌 힘[알파고의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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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알파고 시나씨 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알파고 시나씨 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재미교포가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자 상대방은 이상하고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그 눈빛은 아마 “어떻게 너의 모국어를 못하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외국에서 한국어를 모르는 채 자라다 20대가 되어 한국으로 온다. 이런 경우 역시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부모님이 정말 한국어 하나도 안 가르쳐 주셨어?” 여기에 젓가락질까지 못하면 놀라움 가득한 눈빛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다.

요즘 다문화와 관련한 일들을 하다 보니 많은 다문화 가정을 만나는데, 오히려 앞서 언급한 상황과 정반대 현상을 많이 보게 됐다. 한-러 커플, 한-라오스 커플, 한미 커플, 한-말레이시아 커플, 한-이란 커플 등등. 대부분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한국어 말고는 다른 언어를 못 하고 있다. 얼마나 심각한지 한미 커플의 아이마저 영어를 못하는 사례도 목격했다. 이런 상황을 지적하면 다들 같은 반응이다. “어차피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 건데….” 그러면 나도 반론을 제기한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아들 하룬이도 앞으로 한국에서 살 것 같은데, 그러면 난 괜히 터키어를 가르치고 있네?”

우리 부부는 집에서 한국어로 대화하지만 그렇다고 아내가 터키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7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아내는 터키인 친구들을 사귀었고, 터키에서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보니 기본적인 터키어 대화는 가능하다. 가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비밀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 터키어로 말한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아내에게 부탁했다. “아들이랑 제발 터키어로 이야기하지 마!” 아이 머릿속에서 엄마의 언어, 아빠의 언어를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와는 터키어로, 엄마와는 한국어로 이야기한다. 아이가 한국어는 당연히 잘하고 있고, 터키어 구사 능력은 한국어만큼은 아니어도 터키인이랑 의사소통은 가능한 수준이다.

사실은 이 상황마저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나는 터키 출신이지만, 쿠르드족이다. 그래서 아들이 쿠르드어까지 잘하기를 원하고 있다. 터키어 언어 문제가 확실히 극복이 되면 쿠르드어에 도전할 계획이다.

다문화 아이들은 이미 생김새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다소 불편함을 겪으며 살고 있다. 이 아이들이 장차 한국 사회가 번창하도록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 아이들은 한국 사회가 국제 사회와 교류하는 데 있어 ‘구글 번역기’보다 더 뛰어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다문화 부모들의 몫이 크다. 특히 한국인-외국인 가정에서 한국인 배우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다. 이를테면 라오스인과 결혼한 한국 남자는 라오스에 대해서, 페루 남자랑 결혼한 한국 여자는 페루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 나라의 음식과 역사, 인사말 등 부모가 관심을 가지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부모의 나라에 관심을 가진다.

다문화 부부들은 자기 자녀가 양 국가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우리 집은 터키에서 어머니를 매년 몇 달 정도 집에 초대해 모신다. 우리가 일하러 갈 때 어머니가 아이와 터키어로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터키의 언어와 음식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터키 문화원 행사에 종종 참여하면서 한국에서도 문화적인 끈을 유지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세계 곳곳과 무역을 하고 교류를 이어가려면 이 작고 귀여운 ‘번역기’들이 양쪽 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이해하는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 강대국 미국은 이미 이러한 다문화 ‘번역기’를 많이 길러내 국가의 자원으로 키우고 있다. 한국은 강대국의 길 앞에 서 있다. 이 길에서 우리도 이러한 양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한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

알파고 시나씨 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번역가#힘#재미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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