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래동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 안이었다. 환승역에서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한 노인이 노약자석으로 향했다. 그러나 노약자석은 이미 만석이었고, 노인은 마치 그 노약자석이 태어날 때부터 자기 자리인 것처럼 말했다. “내가 좀 앉아야겠는데.” 참고로 노인은 한눈에 봐도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노약자석을 먼저 차지하고 있던 다른 노인들도 충분히 나이가 들어 보였다.
노인은 다시 한 번 목청껏 말했다. “내가 좀 앉아야겠는데!” 노약자석의 다른 노인들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한 노인이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피다 앞서 말한 노인과 하필 눈이 마주쳤다. 그 불운한 노인은 자신을 사납게 흘겨보던 노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마지못해 자리를 양보했다. “여기 앉으슈.” 불운한 노인은 이어서 말했다. “나도 올해 칠십다섯이오.” 노약자석을 양보받은 노인은 이에 질세라 재빨리 쏘아붙였다. “나는 여든다섯이야!”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공연한 시비가 붙을까 봐 노약자석 쪽으로는 차마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 문득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 떠올랐다. 그 무렵 아이는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모든 아이에게 인사 대신 “같이 놀자”는 말부터 건넸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반응은 놀랍게도 거의 똑같았다. 요컨대 열에 아홉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너 몇 살인데?” 그럼 아이는 그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 무렵 아이는 자기 나이를 헤아릴 줄도 몰랐고, 높임말도 할 줄 몰랐다. 아내와 나는 애초에 아이에게 나이 개념과 높임말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까 아이보다 한두 살 많은 아이들은 아이가 자기한테 반말을 한다며 아이를 따돌리거나 때렸다. 그제야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아이에게 자기 나이와 깍듯한 높임말부터 가르쳤어야 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든 나이와 상관없이 깍듯하게 높임말을 쓰는 나는 과연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걸까. 글쎄다. 서로 높임말을 주고받던 상대방이 나보다 어리면 속으로 얕잡아 보기도 했고,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속으로 ‘꼰대’라며 무시하기도 했다. 겉치레에 불과한 예의를 지키면서 요령만 늘었을 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못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위정자처럼 말이다.
다행히 아이는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높임말을 배웠고, 그만큼 다른 아이들과 시비가 붙는 일도 잦아들었다. 다만 집에서는 예외다. 아이가 어쩌다 아내와 나한테까지 높임말을 쓰면 아주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꼭 반말로 고쳐 말한다. 아무래도 아이에게는 지키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아이에게 그나마 집이 겉치레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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