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아진 회사는 어디일까. 애플카 개발에 나서는 애플? 명품 차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 러브콜 받는 걸로 치면 대만 반도체 업체 TSMC가 1순위다.
적당히 잘 봐달라는 수준의 구애가 아니다. 새해 초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장(장관)에게 “독일 자동차 산업을 위해 TSMC에 반도체 생산을 늘려 달라고 해 달라”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대만 정부는 “세계 각국이 외교 루트로 증산 요청을 하고 있다. TSMC 등에 서둘러 달라고 촉구했다”고 알렸다. 미국 새 행정부가 중국에 대만 압박을 중단하라고 경고한 게 대만 반도체 산업 보호 목적이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중국 SMIC가 미국 제재를 받으면서 몸값은 더 높아졌다. 정보기술(IT) 기기용 반도체에 집중하는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가 주력 사업이 아니어서 시장점유율이 낮다.
유례를 찾기 힘든 반도체 품귀의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다. 집콕,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PC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 수요가 폭발했다. 반도체 수요는 늘어났지만 공급에는 한계가 따랐다.
불똥은 자동차산업에 튀었다. 자동차가 첨단화되면서 센서, 디스플레이 등 전자부품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필수 소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전통적으로 반도체보다 엔진, 미션 같은 ‘기름 묻는’ 부품을 중시해 왔다. 그 결과가 작금의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다. 미국 포드사는 2월 19일까지 공장 가동을 멈추고 독일 폭스바겐은 올 1분기 생산량을 계획보다 10만 대 줄인다. 일본 도요타 혼다 등도 감산에 들어갔다. 현대차그룹은 1, 2개월 치를 확보했다지만 그 이후는 100% 장담이 어렵다. ‘올해 자동차 업계 순위는 TSMC가 정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수 있다.
차량용 반도체 대란은 얽히고설킨 글로벌 공급 사슬의 현실을 보여준다. 세계를 호령하는 선진국 자동차 메이커도 언제든 ‘슈퍼 을’이 된다. 3만 개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을 전부 스스로 만들자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을 공급 확보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국가 기간산업인 자동차 산업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2년 전 일본의 수출 규제를 겪은 한국에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수백억 원 규모의 소재 수입 차질로 주력 산업이 마비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겪었다. 정부가 대대적인 소재·부품·장비 육성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이 분야 일본 수입 비중은 1년 전보다 오히려 0.2%포인트 높아졌다.
외교 갈등 때문이 아니더라도 차량용 반도체 같은 부품 소재의 수급 불안정은 언제 어디서라도 발생할 수 있다. 일시적 수급 불안정이라는 이유가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이런 시기에 주력 산업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산업계가 방기해선 안 될 임무다. 글로벌 공급 사슬에서 한국의 약점은 어디 있는지, 안정적 생산망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는 무엇을 할지 점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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