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모르게 자주 정신을 잃었던 김모 씨(여·76)는 얼마 전 그 원인을 알게 됐다. 파스처럼 가슴에 붙여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패치 형태의 웨어러블 장치 덕분이다. 실신의 원인은 일시적 심정지였다. 그 덕분에 치료를 무사히 마치면서 갑작스러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웨어러블 장치를 이용해 생명을 살린 국내 첫 사례였다.
갤럭시워치와 애플워치 등 웨어러블 장치를 이용하면 본인의 심전도와 혈압, 맥박, 스트레스, 산소포화도 등의 생체 징후를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애플워치 측정으로 심방세동의 위험을 감지해 조기에 응급실에서 치료받은 사례도 나왔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웨어러블 장치는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들어왔다. 침대 매트리스에 깔아 두는 수면 모니터링 센서를 활용해 환자의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수면건강 정도를 의사가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 파악할 수 있다. 또 허리띠 모양의 웨어러블 장치는 비만도 측정뿐만 아니라 식습관과 배변습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식사 시 배 둘레 변화를 허리띠로 감지할 수 있고 화장실에 가면 허리띠를 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습관까지 측정된다. 이처럼 병원에서 단발성으로 얻은 데이터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계속 얻는 빅데이터의 가치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당뇨병 환자의 혈당 체크를 위한 웨어러블 장치가 나왔다. 과거에는 바늘을 찔러 혈당검사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이 본인이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바늘 없이 해당 부위에 접촉만 하는 걸로 혈당 체크가 가능하다.
환자의 생명까지 살리는 웨어러블 장치들이 이렇게 속속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앞서 김 씨의 경우 실신했을 때 바로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병원에 심전도 데이터가 전송됐다면 더 빨리 진단했거나 더 빠른 응급조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씨는 예약된 진료일에 병원을 찾아 일주일 동안 기록된 데이터를 전한 뒤에야 진단이 가능했다.
현재 나온 웨어러블 장치들은 실시간으로 병원에 전송이 될 수 있는 기능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기능을 활용할 수 없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중앙서버에 저장하는 기술력도 있지만 관련 법적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 반면 미국 중국 일본에서는 환자의 데이터가 바로 전송돼 실시간 파악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진단이 이뤄지고 바로 병원에 올 수 있게 하는 시스템도 갖춰졌다.
웨어러블 장치는 환자에게는 분명 큰 도움이 되고, 생명까지 살릴 수 있는 유익한 도구이지만 현장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려면 병원의 생태계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웨어러블 장치로 김 씨를 살린 이대목동병원 심장내과 박준범 교수는 “웨어러블 장치의 실시간 활용이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의료사고 책임 소재가 해결돼야 한다. 만약 책임 소재가 의료진에 있다면 부착형 의료기기를 처방한 의료진은 중환자실과 같은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실적으로 이에 소요되는 인력, 시간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웨어러블 장치의 정확도에 대한 지적도 아직 많다. 실제로 스마트워치가 울려주는 부정맥 알람을 보고 불필요하게 병원을 방문했다가 정상이라는 진단을 확인한 뒤 귀가하는 사례도 많다. 심전도와 박동수, 호흡수를 측정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단순히 호기심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부정맥 질환으로 고통받고 폐기능이 좋지 않아 산소포화도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당뇨병이 있어 항상 저혈당을 두려워하는 만성 질환자에게는 든든한 보호막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는 기기의 신뢰도, 적절한 보상(수가), 개인정보, 원격진료 등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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