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비(非)백인, 오바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읽는 키워드들이다. 여성과 소수 인종,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인맥을 중용한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키워드가 ‘진보적 가톨릭’이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가톨릭 학교를 다닌 그는 개신교가 주류인 미국에서 존 F 케네디에 이은 두 번째 가톨릭 대통령이다.
▷그의 취임식은 가톨릭적인 이벤트였다. 취임식 기도는 예수회 신부가 맡았고 참석자들도 가톨릭 신자들이 주를 이뤘다. 축가를 부른 레이디 가가는 이탈리아계, 제니퍼 로페즈는 라틴계, 축시를 낭송한 어맨다 고먼은 아프리카계 가톨릭 신자다. 최초의 흑인 출신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과 노동부 및 보훈부 장관 지명자를 비롯해 바이든의 초대 내각엔 가톨릭 신자가 다수 포함돼 있어 미 역사상 가장 가톨릭적인 정부로 불린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톨릭 중에서도 진보파에 속한다. 낙태와 동성결혼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반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보수적인 미 주교회의는 취임식에 즈음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정책을 추진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의 최대 우군은 진보 성향인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이 공개적인 지지선언을 한 적은 없지만 미 주교회의 비판 성명이 나왔을 땐 미국 내 교황 쪽 추기경들이 반박 성명을 냈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종교는 복음주의 기독교다. 1960, 70년대 히피문화에 대한 반발로 보수적 복음주의가 세를 불리기 시작했는데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들의 몰표로 당선됐다. 복음주의에 바탕을 둔 부시 행정부의 선악 이분법적인 접근이 이라크 전쟁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신앙심이 두텁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복음주의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은 뜻밖이다. 복음주의의 주류인 백인 노동자들의 경제적 박탈감에 주목하고, 복음주의의 기독교 국가주의를 미국 우선주의로 수용하면서 가능했다는 해석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고 멕시코와 국경 장벽 건설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정의와 연대를 강조하는 진보적 가톨릭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의 종교적 신념이 분열된 미국을 치유하고 평화로운 세계질서를 복원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와 접점을 찾고 있는 ‘디모테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 간의 공통된 신앙에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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