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대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2005년 8·31 부동산종합대책에 들어간 공급방안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서울 송파구의 특전사 부대 등을 옮기고 확보한 200만 평에 강남 대체 주거지를 만드는 구상은 우리가 알던 공무원식 발상과는 달랐다. ‘수도 1000만 국민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운 특전사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위례신도시도 없었다. 당시 대책반장을 맡았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특전사 관계자의 대화를 풀어보면 좀 유치하다. 그만큼 모두 절박했다.
“특전사분들은 뭘 타고 다니나요?”(김석동) “주로 비행기로 이동한 뒤 공중에서 낙하산으로 뛰어내리지요.”(특전사 관계자) “비행기 타고 공중에서 뛰어내리는데, 부대가 경기도에 있으나 서울에 있으나 다를 게 있나요?”(김석동)
공방은 돈 문제에서 결론이 났다. 특전사는 부대 이전에 수조 원이 들어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재정당국을 압박할 의도였을 것이다. 김석동은 그 돈, 재정에서 모두 충당하겠다며 논쟁을 끝냈다. 부지를 팔면 3조 원 아니라 30조 원도 마련할 수 있다고 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언한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공급대책” 발표가 임박했다. 대통령의 공급 선언이 어떤 대책보다 효과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장에선 여전히 호가가 오르긴 해도 매수심리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이제 공급대책으로 사람들을 놀라게만 하면 된다.
하지만 공무원들을 보면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 말에 가장 놀란 쪽은 국토교통부 사람들이었다.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할지 전혀 몰랐고 무엇보다 준비한 대책 가운데 예상을 뛰어넘을 만한 게 없었다. 신도시급 용지를 찾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끝장토론을 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현 정부는 그동안 집값 급등의 근본 원인을 공급 부족이라고 보지 않았다. 보수 정권의 부동산세 완화와 글로벌 저금리 기조 때문에 돈이 넘쳐나는 데다 집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과다 분출된 결과가 가격 상승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보수는 점진적, 진보는 급진적이라는 게 상식이지만 부동산 정책에서 양쪽의 성향은 반대로 나타난다. 현 정부는 낡은 집을 싹 허물고 새로 짓는 급진적 재개발 방식이 돈 없는 저소득 원주민을 외곽으로 내몰 수 있다며 반대한다. 땅주인과 건설사 배만 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절충점이 임대 비율을 높인 점진적 공공재개발이다.
속도를 늦추고 세입자를 배려하는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집을 100% 공급할 수 있다면 굳이 시장주의적 해법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점진적 공급 카드를 정책기조로 정했다면 첫해부터 꾸준히 물량을 늘려야 했다. 연간 멸실주택이 2018년 기준 전국적으로 11만5000채에 이른다. 딱히 수요가 늘지 않아도 매년 새로운 땅을 구해 집을 지어야 하는 셈이다. 기반시설과 주민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서 원주민 소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낮은 지역에 한해 민간 주도 개발을 허용하는 건 어떤가.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도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여건이 되는 곳에선 조건부로 ‘민간 중심 뉴타운 사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답은 공급뿐이었다. 그런데도 관가에선 ‘민간 아파트 공급에 수요가 자극돼 집값이 오르면 경을 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8·31대책 당시 국민 편익보다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동분서주하던 어느 관료의 모습이 겹쳐진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예나 지금이나 위에서 깨지지 않으려 적당히 타협하는 관료가 일을 망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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