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215만 ‘동학개미’에게 지난주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해 36조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삼성전자가 13조 원이 넘는 돈을 배당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여기엔 1회성 특별배당금 10조7000억 원도 포함됐다. 주당 1578원인 특별배당은 당초 증권가에서 전망한 1000원 안팎을 훌쩍 뛰어넘었다. 삼성전자 개미 주주들은 평균 35만 원을 특별배당 보너스로 받게 됐다.
이와 달리 금융주(株)에 투자한 개미들은 날벼락을 맞은 분위기다. 올 들어 ‘삼천피’(코스피 3,000)를 연 강세장에서도 금융지주 주가는 오히려 떨어지거나 제자리다. 더군다나 주요 금융지주들이 증권 계열사의 실적 약진에 힘입어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게 확실시되지만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이 은행 등 금융지주사에 배당 성향을 20% 밑으로 낮추라고 권고한 탓이다. 순이익의 20% 이내에서 배당을 하라는 뜻이다. 금융위원회 정례회의를 거쳐 구체적 수치까지 담은 배당 자제 권고안이 나온 건 처음이다. 이름만 권고일 뿐 금융사가 막강한 규제 권한을 가진 당국의 뜻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배당액은 2조8600여억 원. 순이익의 25∼27% 수준이다. 금융위 권고대로라면 4대 지주는 배당을 6500억 원 넘게 줄여야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금융사들이 배당을 줄여 선제적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게 금융위 논리다. 스트레스 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 결과가 토대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큰 충격이 닥치고 올해 ―5.8% 성장 이후 0%대 성장을 이어가는 장기침체 시나리오에서 상당수 금융사가 건전성 지표를 넘지 못했다는 거다.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성장률 3% 안팎을 제시하는데 이를 배당 축소 근거로 내세우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와중에 은행 등 금융권을 겨냥해 ‘이익공유제’에 참여하라는 여당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금융회사 이익의 일부를 자영업자 등 코로나19 피해 계층을 위한 이자 감면이나 기금 출연으로 내놓으라는 요구다.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배당을 줄여 이익을 쌓아두라면서 이익공유를 명분으로 이익을 토해내라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주주 몫인 배당을 얼마나 할지는 기업이 실적과 경영 전략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할 일이다. 당국의 지나친 배당 간섭은 주주 재산권을 침해할뿐더러 외국인 투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금융사엔 “배당은 줄이고 이익공유는 하는 근거는 뭔가” “당국에 반대 뜻을 전할 수 있느냐”는 해외 주주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당국의 배당 제한 등을 문제 삼은 “상장 금융회사에 대한 관치금융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은행 등 금융사의 건전성을 높이려는 정책적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권 침해 소지가 다분한 규제와 간섭은 한국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업을 시시콜콜 통제하고 손 벌릴 대상으로 여기는 한 금융 혁신은 요원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