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어제 공개한 ‘2020 국방백서’에서 북한 체제와 관련해 2년 전 ‘정권세습’이라고 표현했던 대목을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으로 바꿨다. ‘가까운 이웃이자 동반자’라고 했던 일본에 대해선 ‘이웃국가’라고만 했다. 이번 백서도 ‘2018 국방백서’와 마찬가지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채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영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기술했다.
이번 백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번째로 2년 만에 새로 낸 것이지만 2019년 초 발간된 ‘2018 국방백서’의 기조 그대로다. 지난 2년 요동쳤던 한반도 정세와 안보현실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당시는 남북, 북-미 간 대화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던 시기다. 하지만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은 잇단 도발과 위협으로 남북관계를 긴장과 대결로 되돌려 놨다. 그런데도 군의 인식은 여전히 ‘한반도의 봄날’에 멈춰 있는 듯하다.
백서는 북한이 그간 증강시킨 핵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안보환경의 악화를 사실상 외면했다. 미사일 고도화와 특수작전군 같은 재래식 위협의 증가를 평가하면서도 핵능력에 대해선 2년 전 내용을 그대로 유지했다. 북한은 대화 국면에서도 고농축우라늄(HEU) 보유량을 수백 kg으로 늘리고 핵탄두 소형화도 달성했다는 해외 정보평가가 잇따랐지만, 백서는 ‘상당량’ ‘상당 수준’이라고만 했다.
북핵 위협에 대한 평가가 이러니 북한의 실체에 대한 인식이 바뀔 리 없다. 북한은 남측에 ‘대적(對敵)사업’을 선언했고,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우리 군에 북한은 적이 아닌, 협력할 상대 또는 관리할 대상이다. ‘동반자’에서 ‘이웃국가’로 격하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인 셈이다.
군은 정부의 대외정책을 뒷받침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 바탕은 힘과 의지에 있고, 그 동력은 위협 상대의 능력과 의도를 정확히 읽고 대비하는 데서 나온다. 당장 대적할 상대도, 우선순위도 헷갈리는 마당에 군이 최후의 보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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