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2일 내놓은 ‘2020 국방백서’에 대한 일본 정부와 언론의 관점은 달랐다. 일본 정부는 이날 주일 한국대사관 무관을 초치해 독도 영유권과 일본 초계기의 근접비행 관련 부분에 대해 “일본 입장과 다르다”며 반발했다. 하루 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도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 수출관리 수정, 레이더 문제 기술 등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에 대해 곧바로 항의했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을 ‘동반자’에서 ‘이웃국가’로 격하시키고, ‘북한은 적’이란 문구를 올해도 뺐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일본을 보는 한국 정부의 시선이 점차 차가워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양국 관계의 냉각을 반영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상호적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지난달 시정방침 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국가”라고 표현했다. 1년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한국은 원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라고 한 것에서 후퇴했다. 한국 정부가 국방백서에서 일본을 동반자가 아니라 이웃국가라고 표현한 것은 일본의 이 같은 격하에 대응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한일 간에 서로 격 낮추기가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더 심해진 것 같다. 일본은 2017년 외교청서(한국의 외교백서)에서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규정했으나 2018년과 2019년 이를 삭제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표현에 그쳤다. 한국 외교백서에서도 일본의 중요성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이처럼 양국이 서로의 전략적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사이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한 2019년 7월,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는 한일의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드는 도발을 했다. 한일 간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 것이다. 한일이 삐걱거릴수록 북핵 대응을 위한 한일, 한미일 공조에도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요즘은 한국 기자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한국 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는 것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한 데 대해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징용과 위안부 문제는 외교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 양국이 해결에 적극 나선다면 서로 격을 올려주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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