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재벌개혁 성과라니[오늘과 내일/김용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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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처벌에 적용대상들은 회피 방안 찾을 수도
‘反기업’ 처벌 강화 아니라 섬세한 정책 고민해야

김용석 산업1부장
김용석 산업1부장
“업계에선 삼성전자 건설 공사가 사고가 덜 난다고 합니다. 안전을 조금만 안 지켜도 공사를 스톱 시킵니다. 일반 현장에선 그렇게 안 합니다. 다 지키기 어려워요. 지금보다 공기(工期)가 길어지고, 돈이 두세 배 더 들어가야 하죠.”

“그런데 열심히 한다고 해도 과실 사고가 나요. 미끄러지는 낙상이 현장에선 제일 많습니다. 인과관계를 따지기 어려워요. 규정을 안 지켰다면 처벌받는 게 맞지만, 근로자끼리 부딪쳐 넘어지거나… 여러 경우가 있습니다. 비정형화된 현장이라 사고는 불가항력이에요.”

한 중견 건설업체 대표의 말에는 산업 현장 안전사고에 관한 두 개의 진실이 담겨 있다. 첫째, 기업이 비용을 늘려 손해를 감수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 둘째, 안타깝지만 아무리 손해를 감수해도 사고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고가 발생하면 ‘대표이사 징역형’처럼 큰 리스크를 안겨 주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기업들이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안전에 비용을 더 쓸 것이라는 중대재해법의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논리는 ‘비용을 늘리면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공식이 먹힐 때까지만 유효하다. 비용을 아무리 늘려도 안전사고를 완전히 없애는 게 불가능하고, 안전사고가 한 번만 발생해도 사업이 망할 정도로 큰 리스크가 생긴다면 어떨까. 오너이자 대표가 ‘원 맨 플레이’하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대표이사 징역은 곧 기업이 망한다는 의미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사업을 접거나, 교도소 담장 위를 걷거나.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이 법이 일종의 ‘폭탄’이 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과도한 처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장관, 지자체장을 빼려는 시도도 있었다. 학교장을 제외해야 한다는 등 보완을 요구하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50인 미만 중소기업은 3년 유예했다. 중소기업 유예 조항은 여러 법에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사고가 난 중소기업의 책임자들은 빠지고 원청 대기업만 책임을 떠안는 부조리를 몇 년간 양산하게 했다.

대기업 입장에선 비용 투입 효과가 더욱 불투명해진다. 비용은 큰데 효과가 불투명한 상황은 회피하는 게 합리적이다. 모든 현장에서 그렇지 않겠지만, 이 법은 결국 대기업들이 리스크를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자동화를 선택하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대재해법이 이렇게 ‘폭탄 던지기’가 돼 버린 배경은 무얼까. 1월 18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한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재벌개혁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했다. 문 대통령은 재벌개혁 성과 중 하나로 중대재해법을 들어 답했다. “대기업 하청을 통한 위험 외주화 문제, 외주화된 위험을 책임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 산업장 안전 문제도 진일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재벌개혁과 산업안전을 연결시킨 대통령의 시각은 문제의 전체를 온전히 설명해 내지 못한다. 대기업 외주를 받지 않은 사업장은 더 안전한가. 정부나 공기업 발주를 받은 하청업체의 안전사고는 재벌개혁과 무슨 상관이 있나. 대통령 답변은 국회가 중대재해법을 만든 밑바닥에 반재벌, 반기업 정서가 깔려 있다는 것을 예상하게 해준다.

산업현장 안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열쇠는 재벌개혁이나 반기업 정서가 아니라 1222개나 된다는 산업안전보건법 규제가 현장에서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효과를 내도록 유도하는 섬세한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중대재해처벌법#재벌개혁#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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