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매주 일요일 열렸던 고위 당정청 회의의 한 참석자는 당시 분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원 팀’인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불꽃이 튀었던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지원금 때문이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하자”고 했지만 4·15총선을 앞두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은 “대상을 더 늘려야 한다”고 홍 부총리를 윽박질렀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민주당과 같은 주장을 폈지만, 김상조 정책실장은 홍 부총리를 적극 엄호했다.
한 달여의 기간 동안 논의는 널을 뛰었다. 지급 범위가 50%가 됐다가, 70%가 됐다가, 전 국민이 대상이 됐다. 대통령의 말도 뒤집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30일 “소득 하위 70% 가구에 대해 4인 가족 기준 가구당 100만 원”이라고 했지만, 최종 결과는 전 국민 지급이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도 정부 여당은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4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똑같은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거취를 두고 아무 말도 못 했던 민주당은 홍 부총리를 향해서는 압박도 모자라 “나가라”며 등을 떠밀고 있다. 청와대는 팔짱만 끼고 있다.
혼란스러운 건 국민들이다.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궁금한 건 똑같다. 나는 받을 수 있나 없나. 준다면 얼마를 주나. 그리고 언제 주나.
민주당은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맞춤형 지원과 전 국민 지원을 함께 하겠다”면서도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이 결론을 낼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파열음만 들린다. 범위와 대상을 정한 뒤 정부 여당이 한목소리로 지급 사실을 발표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손실보상제도 마찬가지다. 손실보상제 논의를 주도한 총리실은 일관되게 “소급 적용은 없다”고 했지만, 여당은 달랐다. 민병덕 의원 등 63명의 의원들이 발의한 특별법에는 “손실보상금은 소급하여 지급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당정이 간신히 입을 맞춰 소급 적용 불가 방침을 밝히나 싶더니, 4일 여당 최고위원이 돌연 “법 규정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상당히 변수가 될 것”이라며 소급 적용의 여지를 뒀다. 여당이 계속 군불을 피우니, 하루하루 생존을 고민하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 지독한 희망고문이다.
이런 정부 여당의 불협화음을 두고 최재성 정무수석은 2일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자유로움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재난지원금도, 손실보상제도 결국은 빚을 내 재원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빚이 무섭다고 생존이 힘든 계층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지급 규모와 대상을 빠르게 결정해 집행하고 책임지는 것이 정부 여당의 자세다. 얼마나 더 희망고문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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