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사육사들은 악어를 제압할 때 테이프로 입을 묶는다. 입을 벌리는 힘이 약해 테이프로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작은 악어들은 고무줄로 묶어도 입을 벌릴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악어가 입을 벌리면 무시무시한 흉기로 변한다. 악어의 벌린 입 모양에 빗댄 국가 재정 ‘악어 입 그래프’도 나라에 큰 위협이다. 줄어드는 세입을 아래턱, 늘어나는 세출을 위턱으로 보면 이 그래프는 지속적인 재정 악화를 나타낸다. 최근 안일환 기획재정부 2차관이 이런 그래프를 경고하고 나섰다.
▷악어 입 그래프는 일본이 한국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재무장관회의 때 마나고 야스시 일본 재무성 주계국장(한국의 예산실장 격)이 한국 관료들 앞에서 꺼내 든 일본 정부의 세입과 세출 그래프였다.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로 빚을 내 복지예산을 늘리면서, 세출은 계속 위를 향하고 세입은 아래로 향하게 됐다. 그 결과 일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990년 64%에서 지난해 266%까지 치솟았다.
▷안 차관은 “재정 지출의 불가역성을 경고한 일본의 악어 입 그래프의 의미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쓸 돈과 빚은 느는데 들어올 돈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뜻이다. 과거 연간 20조 원대였던 적자 국채 발행액이 지난해 102조 원으로 증가했고, 국가 채무는 1000조 원이 코앞이다. 반면 올해 국세 수입은 전년 대비 9조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올해 50%를 돌파하고 2025년에는 65%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악어 입 그래프가 무서운 건 한번 벌어지면 다물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빚이 늘다 보면 다시 빚을 내 이자를 갚아야 한다. 올해 국채 이자로 지불해야 할 돈이 사상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사상 처음 인구가 줄었고, 일자리는 고용 재난 수준이다. 집안 살림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돈을 벌 식구는 줄고, 그나마 가장마저 실업 위기에 내몰린 상태로 봐야 한다.
▷한국과 달리 일본 세수는 2012년부터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준(準)기축통화인 엔화를 무제한 찍어낸 데다 일자리가 늘어난 덕분이다. 일본은 현재 구직자 100명당 106개의 일자리가 있다. 한국과는 처지가 완전히 다른 셈이다. 이런데도 한국 정치권은 코로나 재난지원을 명목으로 ‘빚내서 돈 풀기’ 경쟁을 하고 있다. 국민 빚을 국가 빚으로 바꾸자는 황당한 주장이 쏟아진다. 이대로라면 악어 입 앞에 놓인 먹잇감 같은 처지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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