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속에 숨어 있는 용, 잠룡(潛龍)으로 태어난다. 모두가 하늘을 나는 비룡(飛龍)이 되는 건 아니다. 잠룡 시절을 슬기롭게 견딘 사람만이 비룡이 돼 승천할 수 있다. 정치인에게도, 기업인에게도 잠룡의 때가 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날개를 펴고 글로벌 시장을 누비게 될지, 현지 시장에서조차 기를 못 펴 도태될지 결정된다. 잠룡은 어떻게 비룡이 되는가? 주역은 그 비결을 6단계로 일러준다.
첫 번째, 잠룡의 시기에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근신해야 한다. 주역에서는 이를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 표현한다. 잠룡은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는 의미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받고도 태종이 죽을 때까지 몸을 사렸다. 왕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멸하던 태종이 세종의 처가를 풍비박산 내 장인이 사약을 받고, 장모가 노비 신분으로 전락해도 세종은 비정할 정도로 침묵했다.
그때 만약 세종이 태종에게 맞섰더라면 비룡이 되기 전에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컴퓨터를 시장에 내놓기 전에 하드웨어의 디자인을 수십 번 고쳤다. 소비자의 눈에 띄지 않는 회로기판까지도 세심하게 다듬은 후 최상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자체 완결적 구조를 가진 애플컴퓨터는 마침내 비룡이 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
두 번째,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현룡(見龍)의 단계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행동 지침은 인재 발굴과 네트워킹이다. 주역에 ‘현룡재전, 이견대인(見龍在田, 利見大人)’이란 말이 있다. 현룡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는 뜻이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들 가운데 유난히 공동창업이 많은 점에서도 주역의 가르침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완가 기질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와 천재 기술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나 애플을 세웠다.
세 번째, 자기 역량을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 자강불식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의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실력을 연마해야 한다는 의미다. 세종은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에도 3년이란 자강불식의 시간을 거친 후 비로소 공표했다. 구글은 섬세한 검색 알고리즘으로 야후의 검색엔진 정상 자리를 뺏었다.
네 번째, 비룡이 되는 도약의 때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행동에 나서야 한다. 기업이 기업공개나 공격적인 마케팅 등을 통해 사세를 확장하는 단계다. 주역에서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과감하게 연못을 박차고 나와 비상하라고 조언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비룡이 되지 못한다.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은 과감하게 정도전과 세자 이방석을 제거했다. 그가 망설였더라면 조선은 신권이 왕권을 압도하는 허약한 국가로 전락했을 것이고, 조선 왕실 계보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실리콘밸리 대표기업들 역시 창업자의 경영권 약화라는 우려를 안고도 과감히 기업공개를 선택해 더 큰 일을 도모하게 됐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비룡을 위한 조언이다. 비룡의 자리를 유지하는 일은 비룡이 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주역의 다섯 번째 지침은 유능한 인재 등용이다.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 비룡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는 뜻이다. 현룡의 단계에서도 나온 이견대인은 비룡이 돼도 다시금 강조된다. 세종은 비룡이 된 후 과감한 인재등용으로 국가를 반석에 올렸다. 정적이던 황희를 영의정으로, 문인 출신 김종서를 국방 분야 최고책임자로, 노비 출신 장영실을 수석 엔지니어로 기용했다. 세종 때 훈민정음, 4군6진, 자격루와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혁신적인 용인술 덕분이었다.
여섯 번째, 항룡유회(亢龍有悔), 너무 높이 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의미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이카로스는 하늘을 날게 되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무시해 한순간에 추락한다. 모두를 다 가졌으면서도 하나 더 가지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기업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14호에 실린 ‘잠룡이 비룡 되는 6단계의 과정’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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