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의 숨바꼭질[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0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누구에게나 평생 지속됩니다. 감출 것인가, 털어놓을 것인가. 진실을 말할 것인가, 거짓을 말할 것인가. 인생은 숨김과 노출, 거짓과 진실의 두 축을 도는 숨바꼭질입니다. 들킨 아이가 술래가 되어 숨바꼭질은 계속됩니다. 잊지 마세요, 항상 숨을 수는 없습니다.

숨바꼭질은 사라짐과 나타남, 이별과 상봉의 반복입니다. 같이 있지만 다른 데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 남은 거기에. 팽팽한 긴장은 숨은 사람을 찾는 순간 풀어집니다. 숨바꼭질은 몸으로 하는, 비언어적 표현입니다. 애착, 불안, 공포, 갈등이 재현됩니다.

어려서 하는 숨바꼭질은 들키려고 하는 겁니다. 들키지 않으면 아이는 실망합니다. 어른이 하는 숨바꼭질은 숨으려고 하는 겁니다. 들키면 절망합니다. 아이의 숨바꼭질은 관계를 잇는 놀이입니다. 어른이 하는 숨바꼭질의 목표는 이기는 겁니다. 들키면 관계가 끊어집니다.

누구나 숨기면서 삽니다. 나를 지나치게 노출하면 생존이 흔들립니다. 숨김은 능력이자 부담입니다. 숨긴 것이 들킬 것 같으면 마음을 쓰고 애를 태웁니다. 남이 찾지 못하면 기쁘고 만족스럽습니다. 잠시라도 한숨 돌릴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영원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숨겼다는 것은 들키기 직전이라는 말입니다. 계속 감출 것인가, 아니면 털어놓을 것인가. 갈등합니다.

권력자의 비밀은 본질이 다릅니다. 대적하는 사람에게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깁니다. 정보를 독점해서 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진실을 근거로 박해합니다. ‘블랙리스트’처럼 배제하려고 만들고 숨깁니다. 숨긴 것을 알려고 하면 박해하고 배제합니다. 내부자 고발은 교묘한 방법으로 징벌합니다.

숨고 밝히는 게임에서 남의 잘못은 속속들이 뒤져내고 내 잘못은 꼭꼭 감추면 대성공입니다. 속속들이 들춰내기는 어렵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방관하고 싶은 마음도 들기 때문입니다. 비밀이 밝혀지면 숨겼던 사람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비난과 공격에 일일이 반응하고 싶기도, 무시하거나 부정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인생은 숨기고 찾고 알아내고 나누는 게임입니다. 숨기면 누구는 보호받고 누구는 다칩니다. 숨기면 누구는 자유롭고 누구는 구속됩니다. 숨기면 ‘우리’는 평안하고 ‘그들’은 괴롭습니다.

들킨 것이 좀 있어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침묵, 변명, 물타기, 발뺌으로 다 해결됩니다. 형식적인 사과도 약효가 있습니다. 힘이 있으니 상대의 주장을 일축해도 됩니다. 정 숨길 수 없으면 설명을 하기는 하지만 알기 힘들게 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킬레스건’을 찾아야 합니다. 숨기려는 심리의 작동법을 공부해야 눈에 보입니다.

숨기려면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진실은 직선이고 거짓은 곡선입니다. 휘어 있어서 진실을 우회해야 하니 거짓말은 장황합니다. 진실은 열려 있고 거짓은 닫혀 있습니다. 거짓말은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직선적 관계, 열린 관계를 맺으면 들킬 것 같은 두려움입니다. 직선 도로를 가는 척하다가 핸들을 과격하게 꺾는 일탈입니다.

거짓말은 남이 모르는 것을 안다는 만족감을 줍니다. 상대를 속여서 상황을 마음대로 처리한다는 환상도 즐길 만합니다. 거짓말은 두 종류인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보존형, 상대를 공격하거나 지배하려는 가학형이 있습니다. 자기보존형은 생존과 희망을 추구합니다. 자신을 거짓으로 포장해서 관심, 사랑, 존경을 얻으려 합니다. 가학형은 상대를 통제, 모욕하려고 합니다.

좋든 싫든 속이는 능력은 생존에 중요합니다. 동물의 위장술도 그러하고 전장에서는 속이지 않으면 쉽게 죽습니다. 숨긴 것을 뒤지려고 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진실은 하나, 거짓은 여러 모습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은 무엇을 숨겼는지를 알게 하는 단서입니다. 숨김은 정체가 드러나니까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말은 의심받으면 정당화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또 다른 거짓말이 나옵니다.

아이를 키울 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선한 의도로 숨기는 일은 흔히 있습니다. 부도덕한 의도로 숨기는 일도 흔합니다. 내가 기회를 숨기면 남의 기회가 없어집니다. 내가 방법을 숨기면 남이 실수합니다. 내가 가능성을 숨기면 남이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숨바꼭질에서 두려움, 거짓말, 실망이 아닌 희망을 볼 수 있어야 미래가 밝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마음의 지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