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행복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일 수 있다. 1964년에 출간된 이래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그러한 이야기에 속한다.
일 년에 한 차례만 초콜릿을 사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한 찰리는 다른 네 명의 아이와 더불어 초콜릿 공장을 둘러볼 수 있는 황금색 티켓을 갖게 된다. 초콜릿 방은 그야말로 초콜릿 천지다. 나무와 관목, 계곡과 폭포 등 모든 것이 초콜릿이다. 없는 게 없다. 텔레비전으로 전송되는 초콜릿도 있고 아무리 빨아 먹어도 작아지지 않는 왕사탕도 있다. 웡카 사장은 변두리 판잣집에 사는 착한 소년 찰리에게 이 초콜릿 공장을 물려주기로 한다. 초콜릿을 유난히 좋아했던 작가가 쓴 즐거운 초콜릿 이야기다.
그러나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웡카 사장은 초콜릿 제조 비법을 훔쳐가려는 산업스파이가 득실거리자 기존 근로자들을 내보내고 문을 아예 닫아 버린다. 그럼에도 공장은 문제없이 돌아간다. 움파룸파 사람들을 화물상자에 넣어 극비리에 국내로 들여와 노동자로 투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난쟁이들이다.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비유하자면 릴리풋(소인국) 사람들이고, 아프리카 부족으로 치자면 피그미족이다. 그들은 카카오 열매를 맘껏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고향을 떠나 영국 초콜릿 공장으로 이주했다.
움파룸파 사람들은 초콜릿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의 삶은 초콜릿 공장에서 호두를 까도록 훈련된 다람쥐들의 삶과 다를 게 없다. 그들은 초콜릿을 만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기발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실험의 대상이 된다. 마르틴 부버의 말을 빌려 말하면 그들은 ‘그것’이다.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려지는 일종의 인간 물건이랄까. 작가에게는 그런 의도가 없었겠지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슬프고 암울한 이야기다. 달콤한 이야기의 이면을 들춰보고 성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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