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서 랴오둥반도를 할양받자 러시아는 소위 삼국간섭을 통해 이 조치를 철회하고 자신이 차지했다. 그리고 뤼순항을 요새화하기 시작한다. 분노한 일본은 러시아와의 일전을 각오하고 군비 증강에 돌입했다. 이때부터 10년 동안 당시 화폐로 7억 엔이 넘는 투자를 통해 군비를 10배로 늘렸다.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제3국 관찰자들은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문제는 러시아의 시간이었다. 지정학적 여건상 러시아가 만주에 군대를 투입하기는 일본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러면 몇 배로 더 노력해야 하는데, 위기는 인식했으되 위기의 시간은 멀리 떼어 놓았다. 러시아는 일본의 군사력을 극도로 과소평가했다. “일본의 군사력은 유럽의 최약체 국가보다 약하다. 독일군을 모델로 배우고 있지만, 성취도는 형편없다.”
러시아는 느긋했고, 부패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뤼순 요새화에 천문학적 자금을 낭비했다. 러시아 함대는 훌륭했지만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제대로 훈련은 하지 않았다. 러시아군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수병은 세계 최고다. 다만 (훈련을 하지 않아) 포를 쏠 줄 모른다.”
일본은 늙고 굼뜬 제국의 약점을 파고들어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일본은 강대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승리의 교훈을 활용하는 데 오류를 저질렀다. 러시아가 패전한 교훈은 성찰하지 않고 자신의 승리 요인에만 감동했다. 이것이 과한 선전정책과 결부되면서 자기 최면에 빠졌다. 예를 들어 무모한 돌격전은 엄청난 희생을 냈지만, 세상에서 일본군만 할 수 있는 전투 방식이라고 미화했다. 자기 착각은 반세기 동안 성장해 태평양전쟁에서 비극을 낳는다.
패배한 적을 무시하고, 자신의 승리에 도취하면 반드시 자신을 해친다. 다음의 승리를 위해서는 적을 존경하고,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 선전선동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선동을 진리로 믿게 되면 눈이 멀고, 눈먼 칼은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고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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