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자기 몸집보다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꼭 세월을 도둑맞은 느낌이다. 게다가 지난 1년은 학교를 가는 둥 마는 둥 했건만, 그 질긴 코로나바이러스도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은 막지 못했다. 다만 아이의 졸업식은 예년과 달리 조용하게 지나갔다. 졸업식장에는 졸업을 축하해 줄 하객도 없었고 꽃다발도 없었다. 학교 측은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학부모를 포함한 외부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졸업식을 마친 아이는 친구들과 점심으로 피자를 사 먹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가방에서 졸업장과 졸업앨범부터 꺼냈다. 졸업앨범 속 아이들은 나름 저마다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아이는 장래희망이 프로게이머인지 한 손에 마우스를 들고 있었다. 또 어떤 아이는 가슴에 ‘논어’를 품고 있었다. 또 어떤 아이는 해리 포터처럼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아이 덕분에 약 30년 전 졸업앨범 후기에 가장 큰 글씨로 장래 희망을 ‘킬러’라고 썼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무렵 그 친구는 ‘영웅본색’의 주윤발(周潤發·저우룬파)에 미쳐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끝내 주윤발 같은 킬러가 되지 못하고 은행원이 되었다.
아이의 졸업앨범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하면 마치 내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에게 있는 힘껏 아는 척을 했다. 아는 척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이따금 그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동안 아이만 성큼 자란 줄 알았더니 그 아이들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성큼 자랐다. 그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곁에서 띄엄띄엄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그런데 졸업앨범 단체사진은 생각보다 단출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한 학급에 인원이 스무 명 남짓이고, 그나마 매년 입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저학년은 한 학급에 인원이 스무 명이 채 안 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도심지도 아니었는데도 한 학급 인원이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큰 도시의 몇몇 학교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졸업앨범 단체사진의 얼굴은 모두 흐릿한데 까만 머리와 눈동자만 또렷하게 보였다.
문득 지금으로부터 30년 뒤엔 어떨까 싶었다. 그때쯤 아이도 나처럼 학부모가 됐을까. 자기 아이와 졸업앨범을 같이 펼쳐 보며 해리 포터 코스프레 하던 엉뚱한 친구를 떠올릴까. 아니, 그전에 지금의 아이들은 지금의 어른들처럼 훗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을까. 넘쳐 나던 아이들을 한 학급에 대충 구겨 넣었던 과거가 그립거나 좋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이 없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싶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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