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어제 서울 배재고와 세화고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자사고 지정 취소처분 취소 소송에서 “교육청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부산지법도 부산 해운대고가 부산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비슷한 취지로 해운대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2019년 자사고 취소 처분을 받은 전국 사립고 10개 중 3개는 1심에서 승소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고, 나머지 7개가 낸 소송은 진행 중이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5년 단위로 이뤄진다. 2019년 평가의 대상 기간은 2015년부터였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2018년 말 갑자기 커트라인(기준 점수)을 60점에서 70점으로 높이고, 감사 등 지적사항에 따른 감점 폭은 3점에서 12점으로 늘리는 등 기준을 대폭 바꿨다. 그 결과 두 학교 모두 60점을 넘겼는데도 지정이 취소됐다. 법원은 “사후적으로 중대하게 변경된 처분 기준에 따라 소급해 평가를 진행했다”며 “공정한 심사 요청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잇따른 법원의 판결로 ‘평가를 빙자한 자사고 죽이기’라는 비판은 보다 설득력을 갖게 됐다.
자사고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고교평준화에 따른 교육의 획일성을 보완하고 수월성(秀越性)을 추구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래서 학생 선발과 교과 운영에서 일정 부분 자율권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진보진영 교육감들이 평가 기준을 무리하게 바꾸면서까지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인 것은 부당하다.
더욱이 정부는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2025년 일괄 폐지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다.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의 본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자사고 등을 폐지할 게 아니라 일반고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고교 교육의 하향평준화는 학생에게도, 사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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