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전이었다. 이름을 알 만한 선수들이 즐비했던 어느 대학교 체육관에 들렀을 때 거구의 선수들이 코치에게 뺨을 맞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훈련 중 체벌 현장을 목격했지만 당시에는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었던 걸로 생각된다. “누가 누구한테 맞았다더라”는 소문도 자주 들려왔다. ‘잘하라고 때린다’는 식으로 묵인됐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체육 지도자들의 폭언 및 폭행은 점차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지금은 경기 중이나 공개 훈련 장소 등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렇다. 철인3종 국가대표였던 최숙현 선수의 죽음에 이어 최근 불거진 프로배구 이재영 이다영 선수를 둘러싼 폭력 문제들은 노출되지 않은 그들만의 공간이나 개인적 관계에서는 여전히 심각한 폭력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지도자뿐만 아니라 선후배나 동료에 의한 폭행 등 폭력의 질과 범주는 오히려 악화되고 넓어진 듯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전국 초중고교 선수 및 전국 56개 실업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폭력 실태를 조사했다. 초중고교 선수 5만7557명과 성인 선수 1251명이 응답한 조사 결과는 학생 선수, 어른 선수 할 것 없이 심각한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어른으로 갈수록 폭력 현상은 심했다. 학생 선수들의 경험 비율은 언어폭력 15.7%, 신체폭력 14.7%, 성폭력 3.8%로 나타났지만 성인 선수들은 언어폭력 33.9%, 신체폭력 15.3%, 성폭력 11.4%였다. 어른인데도 머리박기, 엎드려뻗치기, 계획에 없던 과도한 훈련, 구타 등의 신체폭력을 거의 매일 당한다는 답변도 8.2%였다.
학생 선수들이 겪는 신체폭력도 일반 학생들이 겪는 것보다 1.4배 많았지만 운동을 생계로 삼고 있는 성인들은 그 이상의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일반 직장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믿기 힘든 현상들이다.
이는 스포츠계의 폭력적인 관행들이 오랫동안 쌓여 하나의 집단 행동양식, 즉 하나의 문화가 된 것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악습들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악습이 제거되지 않을 때 작동하는 것이 정당화이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에서 눈에 띄었던 점 중 하나는 피해를 당한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초등학생 중에는 매일 30∼40대씩 맞았다거나, 엄마가 보는 앞에서도 맞았다고 증언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초등학생들은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니까 괜찮다. 아니, 그냥 운동하면서 맞는 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제대로 하지 않아서 코치님에게 맞는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엄마는 제가 맞는 것도 보신다. 운동할 때 잘하지 왜 맞았냐고…, 다음부터는 똑바로 잘하라고…”라는 답변도 있었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초등학생들의 38.7%가 “다음부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이러한 폭력을 받아들인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는 신체의 활용과 통제가 주된 교육 내용인 스포츠계에서 어려서부터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이 하나의 훈육 수단으로 세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른들이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면서 그 훈육 효과를 내세워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폭력의 정당화를 받아들이고, 자라면서 자신 역시 제자나 후배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상대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과 함께. 이렇게 폭력은 내면화되고 대물림된다. 이런 과정에서는 폭력의 파괴력과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지기 쉽고 일상생활이나 주변의 관계 속에서도 쉽게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
스포츠계의 폭력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근저에는 이렇듯 폭력의 정당화를 용인하는 문화가 있다고 본다. 최근 폭로되고 있는 스포츠계의 다양한 폭력 문제는 그 폭력의 파괴력과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사회 전체에 알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포츠계는 깊고 면밀한 조사를 거쳐 폭력의 폐해 및 그 고통에 대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통해 훈육으로 포장되든 아니든 어떤 형태의 폭력이라도 깊은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개선은 폭력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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